메뉴 닫기

알래스카, 바람 같은 이야기

오시노 미치오 글, 사진, 이규원 옮김, 청어람미디어
2021년 1월 29일 완독

경향후마니타스 글쓰기 강좌에서 알게된 책.
여행에대한 글쓰기 수업이었다. 총 다섯 번 진행된 수업에서 김남희 작가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첫 수업시간에 추천해준 책 리스트에 있었고 두 번째 수업에서 책의 내용을 발췌해서 읽어주었다. “카리부”의 대이동을 사진으로 찍으려고 했던 호시노 미치오. 
생을 마친 것도 그가 그토록 바라던 자연에서였다.

<오로라가 춤추는 밤>을 읽으며 오래간만에 글 속에서 온 몸에 전율이 일었다. 

——— 책 내용 중

“예전에 에스키모 생활의 중심에는 카리부(북미 지역에 서식하는 순록의 일종 — 옮긴이)가 있었고 카리부가 전부였어. 에스키모는 철따라 카리부를 뒤쫓았지. 사람들은 카리부와 함께하면서 정신적인 충만을 얻었어. 거기에는 완성된 생활이 있었던 거야. 그러나 언젠가부터 서양 문명과 함꼐 화폐경제가 들어와 사람과 카리부의 관계가 약해지고, 사람들은 정신적인 충족을 점차 새로운 가치관에서 찾게 되었지. 하지만 그 새로운 가치관이란 것이 카리부하고는 달라서 아무리 쫓아도 붙잡을 수 없는 것이었고, 사람들은 완성된 생활에서 점점 멀어져가 버렸지.” – 29

몽골로이드가 북방아시아에서 베링기아를 지나 알래스카로 건너온지 약 2만 년이 지났다. 그리고 지난 1백 년 동안 알래스카 북극권에는 두 부류의 인간이 새로 들어와 살게 되었다. 하나는 선교사, 상인, 광산업자, 생물학자, 교육자 따위의 사람들이다. 이들은 대개 자신이 전에 살던 지방의 생활양식과 가치관을 이 땅에 고스란히 가지고 들어왔다. 또 한 부류는 이 땅에 벌써부터 존재하던 생활양식과 가치관을 받아들이고 이어받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알래스카에서는 전자에 속하는 사람들은 겉으로 쉬 드러나는 데 반해, 후자에 속하는 사람들은 거의 알려지는 일이 없다. – 35

또 마을공동체의 구조도 변하고 있다. 원주민들에게는 애초에 땅을 소유한다는 관념이 없었다. 땅은 팔고 사는 것이 아니라 그냥 거기 존재하는 것이다. 그것은 수렵생활 속에서 모두가 공유하는, 막연하고 경계선이 없는 세계였다. 새로운 법안에 따라 거액의 자금과 땅이 원주민 법인조직에게 주어지고 미국 자본주의 경제에 편입되었지만, 원주민들의 중심을 이루는 생활은 변함없이 수렵이었다. 그들은 땅을 사유재산으로 보는 데 익숙하지 않았고, 주위에 그어진 그물눈 같은 경계선에 커다란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 59

고래 위에 올라가 묵묵히 작업을 진행하는 젊은 에스키모들에게 노인들이 종종 뭐라고 훈수를 둔다. 보기 좋은 풍경이었다. 어떤 영역에선가 노인들이 힘을 발휘하는 사회야말로 건강한 세계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젊은이들의 얼굴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 78

박물관 안에 아무도 없을 때가 종종 있었다. 옛날 에스키모나 인디언의 의상, 사냥 도구, 극북의 다양한 생물들의 박제, 골드러시 시절 사람들의 일용품……. 늘 잠들어 있는 전시물이지만, 그럴 때는 시간을 초월해서 조용히 말을 건네 온다. – 116

3만 6천 년 전 어느 겨울날, 들소 한 마리가 죽었다. 장소는 지금의 알래스카 대학이 위치한 페어뱅크스 조금 북쪽, 추위는 들소의 몸뚱이를 돌처럼 얼게 했다. 다음 여럼이 와서 몸이 녹은 들소는 비에 쓸리는 진흙에 조금씩 묻혀간다. 몇 년이 흐르자 몸뚱이는 땅 속에 완전히 묻히고 영구동토가 조금씩 주변을 둘러싼다. – 117(화석이 되는 과정을 이리도 쉽게 편안하게 글로 옮길 수가 있을까.)

때때로 멀리 볼 것. 그것은 현실 속에서 유구한 것을 만날 수 있게 해준다. – 120

고무보트의 엔진을 끄자 풍경은 마치 페이지를 넘긴 것처럼 다른 세계가 되었다. 수묵화 같은 솔송나무숲에서 쭈루쭈루 하는 대머리독수리의 아침 노래가 들려온다. 마치 작은 새가 지저귀는 듯한 그 소리는 그 덩치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우윳빛 아침안개로 바다와 하늘의 경계를 가늠할 수 없다. – 134

알카트라즈란 샌프란시스코 만에 떠 있는 작은 무인도다. 그리고 1969년 가을, 이곳에서 전 세계의 주목을 끄는 사건이 일어난다. 아파치, 나바호, 블랙풋……. 모든 아메리칸 인디언 종족이 알카트라즈 섬에 모여 19개월 동안 그곳을 점령했다. 현대적인 고층빌딩이 죽 늘어선 샌프란시스코 시내에서 보면 그것은 기묘한 풍경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 섬이 조상이 물려준 신성한 대지의 일부라고 주장하며, 역사 속에 묻혀져 가는 미합중국과 인디언 부족의 관계를 끄집어내며 작은 전투를 시작한 것이다. (……) 한참 뒤에 딱 한 번 알카트라즈 사건을 알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알은 미소를 지으며 한 마디만 했다. 
“알카트라즈는 내 평생에 가장 충실한 시간이었어. 마음속에 고이 간직하고 싶은 소중한 추억이지.” – 152

“디니가. 우리 인디언 말로 무스를 디니가라고 해.” 캐서린은 장작불에 나무토막을 집어넣으며 말했다. 불티가 날아오르고 가문비나무 수지의 들큼한 향이 코를 찌른다. – 158(이 문장으로 상황, 인물, 배경이 모두 그려진다.)

누구나 과거의 자신을 만나게 되는 노래를 가지고 있다. – 179

이 샤먼 아주머니는 종종 운수가 나빠진다는 말을 했다. 어떤 행동이 왜 안 되는지를 물으면 ‘운수가 나빠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람의 운은 일상생활 속에서 늘 변해가는 것이라고 한다. 그 운을 좌우하는 것은 그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것들과 어떻게 관계하느냐에 있는 것 같다. 그들에게는 ‘자연’이 바로 그것이다. – 183

자연은 강한 자만이 살아남아 자손을 남긴다고 한다. 이리의 습격을 받는 카리부 무리는 미처 도망치지 못하는 약한 놈을 희생시켜서 무리 전체의 강인함을 유지한다고 한다. 지극히 이해하기 쉬운 설명이지만, 자연은 정말 그렇게 교과서대로 움직일까? 의외로 우연성이 지배하는 부분이 있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자연은 약한 자까지도 포용해버리는 넉넉한 품을 가지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 204

노인은 천장을 올려다보고 때때로 잠시 눈을 감고 있었다. 조금 지쳐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뭔가를 생각하는 것 같기도 했다. 뭔가를 생각하는 거라면, 112년을 살아온 사람은 과연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묻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물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고, 아마 대답할 수 없는 물음인지도 몰랐다. – 212

이 여행은 나에게 한 가지 사실을 가르쳐주었다. 땅끝인 줄로만 알았던 곳에도 사람들의 생활이 있다는 당연한 사실. 사람의 생활과 살아가는 모습의 다양함에 매혹되어갔다. 어떤 민족이라도, 아무리 다른 환경에서 살아도, 인간은 한 가지 공통점에서는 전혀 다르지 않다. 그것은 누구나 더없이 소중한 인생을 꼭 한 번만 산다는 것이다. 세계는 그런 무수한 점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쉬스마레프 마을에서 보낸 여름 한철은 시간이 흐를수록 나에게 그런 생각을 심어주었다. – 239

한 에스키모 노파와 툰드라에서 보낸 가을날을 기억하고 있다. 그 노파는 흙을 꼭꼭 디뎌가면서 쥐구멍을 찾고 있었다. 쥐는 겨울에 대비하여 에스키모포테이토라 불리는 새끼손가락만한 뿌리를 저장해 놓는다고 한다. 구멍 하나를 찾아내서 파보자 정말로 한 움큼의 에스키모포테이토가 나왔다. 노파는 그 중에 절반만 꺼내고는, 그 대신 가져온 말린 생선을 넣어 두고 구멍을 다시 흙으로 메웠다. “왜?” 하고 묻는 나를, 노파는 그것도 모르냐는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 244

결과가 처음 의도대로 나오지는 않았지만, 거기서 보낸 시간은 분명히 존재한다. 결국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은, 결과가 아니라 거기서 보낸 다시없이 소중한 그 시간이다. – 257

===========================================================


아끼며 읽고 싶은 책이 있다.
단숨에 읽히지만 한 문장, 한 문장 곱씹으며 작가의 이야기에 귀를 귀울이고 싶은 책이 있다. 이번에 읽은 책이 그랬다. 빠르게 읽고 책장을 덮고 싶지 않았다.
어찌보면 무모할지도 모를 편지로 삶이 바뀌어버린 작가.

===========================================================

호시노 미치오 선생님께 보내는 편지

무엇이었을까요. 당신을 알래스카로 이끌었던 것은. 지금의 도시에서 살고 있는 나에게는 당신의 모든 것들이 무모한 도전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 물론 자연도 좋아하고 모험도 좋아합니다. 하지만 당신과 같은 용기가 없는 것일까요.

당신이 알래스카에서 찾으려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당신의 유고와 사진의 메모를 모아 기록해 놓은 <곰아>를 읽어보았습니다. 커다란 사진과 함께있는 짧은글이 더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들더군요. 당신은 곰에게 이야기하였지만 어쩌면 나에게 보내는 당신의 편지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의 감수성이 당신이 가진 그것만큼만 되었다면 당신의 글을 보며 눈물을 글썽거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가슴이 떨려오는 것은 어쩔 수 없더군요. 어쩌면 당신이 사랑하는 카리부와 그리즐리에게 저 역시 당신과 비슷한 감정을 가졌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당신은 거대한 카리부 떼의 이동을 보고싶어 밥의 비행기를 타고 홀로 어두운 눈위에 서 있었습니다. 그리도 원하던 카리부 떼를 만났지만 그 순간 당신은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어렴풋이 짐작은 갑니다. 왜 카메라를 들 수 없었는지. 아니 카메라를 내려 놓아야했는지.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아주 중요한 순간 – 스스로에게 중요한 순간이지 다른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겁니다.

당신은 붙임성이 좋은 것인지 알래스카에서 많은 친구들을 만들었더군요. 
수다스럽지 않은 사람인것 같았는데도 주변엔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당신은 사랑이 넘치는 사람인가요. 당신 주변에는 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혼자 있을때에도 당신 옆에는 고래나 곰, 카리부, 디니가(무스를 부르는 알래스카 언어) 들이 있었습니다. 당신을 복을 받은 사람이라고 해야할까요. 아니면 노력에 의한 결과로 이런 선물을 받은 사람이라고 해야할까요.

아. 생각나는 말들이, 당신에게 하고 싶은 말들이 너무 많아 머릿속에 차고 넘칩니다. 너무 많아 정리가 되질 않는군요. 용서해주세요. 감히 제가 당신에게 이런 두서없는 편지를 쓴다는게 주제넘는 일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살고 있는 세상과 당신의 세상이 맞닿아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당신이 곰과 같은 시간의 흐름에 있었다는 것 처럼 말이죠. 만일 당신이 지금 나와 같은 시간에 존재하고 있었다면 당장이라도 찾아 나섰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은 행복한 삶을 살았나요. 묻고 싶습니다. 

2021년 2월 어느 날, 당신의 책과 사진을 보고 난 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