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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한도

박철상 지음, 문학동네 – 2020년 8월 17일 완독

아침 해살 흐릿한 성곽 너머로
눈서리 뒤엉킨 드넓은 들판
지독한 추위는 풀리지 않고
남은 겨울을 옥죄고 있다.
모래 길 찾으면서 걸어가는데
얼음은 돌맹이와 뒤섞여 있고
빈 강의 찬 기운은 눈을 찌르며
드넓은 유리 빙판 덮어버린다.
주막 깃발 나부끼는 깊은 마을엔
고깃배 얼어붙어 멀리 갈 수 없지만
파교로 매화를 찾아나서면
시인을 만날 수도 있을 듯하다.
그 옛날 왕휘지는 친구 찾아나섰다
부질없이 섬계에서 배를 돌려 왔었지.
저기 저 한겨울의 나뭇가지 위로는
바람 속에 까치가 맴도록 있다. – 31

우선 이상적(역관-지금의 통역)이 추사의 부친 김노경이 옥사로 인해 고금도로 유배된 상태에 있는 추사 김정희를 위로하기 위해 찾아가며 읊었던 시.

입춘이 지났지만 날씨는 여전히 한겨울이었다. 한강은 유리를 덮은 듯 얼음으로 뒤덮여 있고, 아침 햇살은 흐릿하게 성곽을 비추고 있었다. 주막 집엔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지만 고깃배는 얼어붙어 찾아오는 손님조차 없었다. 그렇게 날씨는 남은 겨울을 매섭게 몰아붙이고 있었다. 그런데 그 추운 아침에 이상적은 추사를 만나러 가고 있었다. 길을 걸으면서 이상적은 그 옛날 왕희지의 아들 왕휘지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어느 눈 내리는 밤이었다. 왕휘지는 갑자기 섬계에 살고 있던 친구 대안도가 보고 싶어졌다. 그는 배를 띄우고 밤새 노를 저어 그의 집으로 찾아갔다. 그러고는 새벽녘, 마침내 그의 집 앞에 도착했다. 하지만 왕휘지는 친구의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발길을 돌려 다시 자기 집으로 되돌아왔다. 아무런 말도 없이 말이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라 할 수 있다. 밤새 고생스럽게 노를 저어 친구의 집을 찾아갔으면, 얼굴이라도 보고 돌아와야 할게 아닌가. 무엇 때문에 그렇게 힘들게 갔다가 아무 말도 없이 돌아왔단 말인가. 그런데 왕휘지의 생각은 달랐다. 자신이 집을 나선 것도 흥이 일어서 그랬던 것이고, 집으로 발길을 돌린 것도 흥이 다해서 그랬다는 것이다. 
이를 보면 이상적이 추사와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찾아가는 게 아님을 알 수 있다. 그저 그는 시름에 잠겨 있을 추사를 위로하러 가는 길이었을게다. 그러니 자신의 행동을 왕휘지의 행동에 빗대어본 것이리라. – 32

주역에 “글로는 하고픈 말을 다 표현할 수 없고, 말로는 마음속 깊은 뜻을 모두 다 표현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글은 말을 표현하는 수단이 아니고, 말은 마음속의 뜻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두가가 아닐 것입니다. 하물며 말로는 마음속의 뜻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고, 글로는 하고 싶은 이야기를 모두 표현할 수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외람되지만 잘 헤아려주시기 바랍니다. – 85

친구 황산의 부고를 들은 제주에 유배되어있던 추사가 친구를 향해 답답하고 허전한 마음을 전한 편지 중 일부.
그들에게 시나 그림은 표현 수단의 차이는 있을망정 목적은 동일한 것이었다. 따라서 그림을 평가할 때에도 묘사력보다는 품격을 이야기하게 된다. 그림은 사물의 형상을 똑같이 그려내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작가의 인품과 학식, 감정과 사상이 드러나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의식을 잘 보여주는 것이 송나라 진여의의 ⎡화장구신수묵매⎦라는 시이다.

함장전 처마 밑에 봄바람이 살랑 불 때
조물주 만든 매화 붓끝에서 살아난다.
정신 표현 완벽하니 모습 같을 필요 있나
전생엔 말을 보던 구방고였나보네.

남조 송나라 때 건물은 함장전 처마 밑에 매화가 피고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올 때, 화가는 그 장면을 화폭에 담았다. 그런데 그 그림은 매화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게 아니었다. 하지만 진여의는 추운 겨울을 용케 견디고 이른 봄에 꽃망울을 터뜨린 매화의 정신이 잘 드러나 있다며 그림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매화의 정신이 잘 표현되어 있는데, 모습이 같고 다른게 뭐 그리 중요하냐는 것이었다. (중략) 보이지 않는 면을 그려내는 능력, 그것이 바로 문인화의 품격을 좌우하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 105

내가 중국을 두 번 여행하면서 보니 글을 짓고 시를 읊는 문인들 중에는 붓을 잡기만 하면 서화를 함께 다루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대부들은 그림을 잡기로 지목하면서 배우려 하지 않는다. 비록 배우지 않았더라도 타고난 재주로 잘하는 사람이 있으면 문득 서로 바라보며 그를 조롱한다. 이는 상형의 근원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심하구나, 고루함이여! – 106

당시 그림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완물상지라는 말을 의식해야 할 정도로 서화의 창작에 참여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던 세태를 보며 이계 홍양호가 언급한 말. 그 당시에도 꼰대로 대변되는 무리들, 즉 변화를 싫어하고 기존의 것을 지키는 것이 옳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었나보다. 추사는 그림도 하나의 학문이라 생각했고 추사가 추구한 세상을 학예일치라고 칭하고 있다.

이런 말이 전해온다. “하늘은 사람이 추위를 싫어한다고 해서 겨울을 끝나게 하지 않으며, 군자는 세상이 어둡고 혼탁하다고 해서 그 행동을 바꾸지 않는다.” 어찌 바꾸지 않기만 하겠는가? 오히려 더욱 굳게 지킨다. 굳게 지켜야만 세상이 융성하거나 쇠퇴해도, 사람의 운명이 평탄하거나 역경에 처해도 개의치 않게 된다. 앞으로 나아가야 할지 뒤로 물러서야 할지 살아남아야 할것인지 목숨을 버려야 할 것인지를 헤아려 정도를 벗어나지 않는 사람은 군자뿐이다. – 213

장악진이 세한도를 보고 써 놓은 제영(다른 사람의 그림이나 글에 덧붙여서 서화 등으로 답장 형식으로 써놓은 것. 지금으로 말하자면 감상평, 후기, 댓글로 이해할 수 있겠다.)

막연히 글 잘쓰는 옛날 사람으로 알고 있던 추사를 책을 통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갑자기 왜? 지역 도서관에서 그에 대한 인문학 강좌를 열었는데 제법 깊이가 있을것 같아 신청했다. 한 달음에 도서관으로 달려가 대출을 받아왔고 닥치는대로 읽었다. 얇은 책 부터.
세한도라는 그림도 이름만 어디에선가 들었지 어떤 그림인지 누가 그린것인지, 왜 그린것인지도 모르고 있었다. 추사에 관한 책을 세 권을 읽고보니 세한도가 어떤 그림인지, 왜 그린것인지는 알게되었으나, 어떤 점이 대단하다는 것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다만 세한도를 받은 사람이 역관 이상적이었고 추사의 제자로 생각할 수 있는 인물인데 이 사람이 유배되어있는 추사를 대신해서 세한도를 들고 중국을 갔고, 그 곳에서 추사와 교류, 친분이 있었던 사람들에게 세한도를 보여주었고 그들이 그 그림에 덧붙여 글을 써 주었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실제의 그림이 어느 박물관 혹은 미술관에 소장되어있는지 찾아봐야겠지만, 실물을 보면 또 다른 감흥이 느껴질테지. 아는만큼 보이는 법이다.  그나저나 옛 문인들은 어떻게 구절을 정확히 맞춰서 한자로 시를 짓고 편지를 쓰고 했을까? 참 머리가 좋았나보다. 그 많은 한자의 뜻과 음, 모양까지 모두 머릿속에 넣고 있었으니……

집과 가까운 과천에 추사 박물관이 있다하니 조만간 둘러봐야겠다. 기대 많이하며 가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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