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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고의 시간들

올가 토카르추크 장편소설, 최성은 옮김 – 2020년 8월 3일 완독

배움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밖에서 배우는 것과 안에서 배우는 것. 흔히 사람들은 전자를 최선, 나아가 유일한 방법으로 여긴다. 그렇기에 장거리 여행, 혹은 보고 읽는 것을 통해서, 아니면 대학 교육이나 수업을 통해서 배움을 얻는다. 존재 바깥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통해 뭔가를 습득하는 것이다. 인간은 어리석은 존재이기에 배워야만 한다. 그렇기에 꿀벌처럼 부지런히 지식을 모아서 그것을 자신에게 덧붙여나가고, 그렇게 지식이 쌓이면 그것을 활용하거나 가공하기도 한다. 그러나 내면에 도사린 ‘어리석음’, 다시 말해 학습을 필요로 하는 본성은 바뀌지 않는다. 크워스카는 외부의 것을 내면으로 동화시키면서 세상을 배웠다.  쌓이기만 하는 지식은 인간에게 아무런 변화를 가져다주지 못하거나 단지 변화를 일으키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그저 겉옷을 다른 옷으로 갈아입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지식을 자기 것으로 만들며 배우는 사람은 끝없는 변화를 체험하게 된다. 배워서 알게 된 것들이 존재 속으로 고스란히 스며들기 때문이다. – p. 18

‘세상의 악은 어디서 비롯된 걸까? 신은 선한 존재인데, 어째서 악을 허락하는 거지? 그렇다면 신은 선하지 않은 걸까?’ – p. 41

인간들은 동물이나 식물, 사물보다는 자신이 훨씬 치열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동물들은 식물과 사물보다는 스스로가 더 치열하게 살고 있다고 여긴다. 식물들은 사물보다는 스스로가 더 치열하게 살고 있다고 꿈꾼다. 그런데도 사물들은 여전히 존속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존속은 다른 무엇보다 더욱 강한 생명력을 의미한다. – p. 52

그라인더를 발명한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 창조란 단지 시간을 뛰어넘어 영구히 존재하는 어떤 것을 상기시키는 행위일 뿐이다. 무(無)로부터 무엇인가를 창조할 능력이 이간에게는 없다. 그것은 신의 영역이다. – p. 52

대체 뭔가를 안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획득한 지식은 얼마나 유용한 걸까? 뭔가를 끝까지 다 안다는 건 가능한 일일까? 그는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 p. 96

처음으로 자신을 상세히 살펴보다가 문득 ‘신’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안다는 건 이름을 붙이는 일이라고 신은 생각했다. – p. 112

신이 물었다. “나는 누구인가? 신인가, 인간인가? 혹은 신이면서 인간인가, 아니면 신도, 인간도 아닌가? 내가 인간을 창조했는가, 아니면 그들을 나를 만들어 냈는가?” – p. 113

남자인 신은 전쟁이나 재난, 정복, 원정과 같은 더 중요한 일들을 처리하느라 바빴기에 먹거리는 여자들이 주관했다. – p. 123

신을 잡아다가 물에 빠뜨려 죽이기로 했다. 계획은 실행되었다. – p. 193

누군가를 죽인다는 건 움직일 수 있는 권리를 빼앗는다는 뜻이다. 삶이란 결국 움직임이니까. 죽임을 당한 몸은 움직이지 않는다. 인간은 몸이다. 그리고 인간이 경험하는 모든 것들의 시작과 끝은 몸 안에 있다. – p. 212

신이 사실은 악마이든지, 아니면 악을 용납해준 거겠지. 그것도 아니면 스스로 모든 걸 망쳐버렸거나.” – p. 229

그의 인생에서 정오의 시간은 이미 지났음을, 그리하여 이제부터는 은밀하게, 서서히, 자신도 미처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땅거미가 내려앉으리라는 것을. – p. 248

1년에 네 번씩 일어나는 사계절의 변화를 나무는 알지 못한다. 시간이 흐른다는 것도, 계절이 순서대로 바뀐다는 것도 모른다. 나무에게는 네 가지 특성이 늘 한꺼번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여름의 일부는 겨울이고, 봄의 일부는 가을이다. 열기의 일부는 냉기이고, 탄생의 일부는 죽음이다. 불은 물의 ㅇ리부이고, 흙은 공기의 일부다. – p. 275

이지도르에게 우체국이란 지구 방방곡곡에 직원들을 파견한, 신비스럽고도 강력한 조직이었다. 우체국은 모든 우표의 어머니이고, 남색 제복을 입은 전 세계 모든 우체부의 여왕이며, 수백만 편지들의 수호자이고, 말과 단어들의 수장이었다. – p. 2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