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닫기

보라색 히비스커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황가한 옮김 – 민음사
2020년 7월 19일 완독

아버지가 교복 세탁에 할당해 준 삼십 분을 마지막 일 분까지 다 쓰고 싶었기 때문이다. – 31
“고맙습니다, 아버지.” 내가 사랑해 혀가 데었음을 느끼며 말했다. – 45
우리는 그것을 제대로 해야만 했다. 하지만 나는 생각하지 않았다. 생각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무엇 때문에 용서받아야 하는지를. – 51

결국 나 혼자 그를 따라갔다. 경기장까지 가는 동안 내 입은 쑥스러움으로 굳어 있었다. 그가 아마카의 발언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그 대신 단내가 나는 비에 관해 얘기하고 카세트에서 흘러나오는 우렁찬 이보어 합창곡을 따라 부르는 것이 고마웠다. 경기장에 도착해 보니 우구아기디 아이들은 이미 와 있었다. 지난번에 본 애들의 더 크고 나이 먹은 버전이었다. 구멍 숭숭 뚫린 반바지도 지난번만큼 낡았고 빛바랜 셔츠도 그만큼 헤어졌다. 아마디 신부는 목소리를 높여 – 그럴 때는 목소리에서 가락이 거의 사라졌다. – 아이들을 격려하고 약점을 지적했다. 아이들이 딴 데 볼 때 그가 막대를 한 칸 올리고 나서 “한 번 더. 준비, 출발!”하고 외치면 그들은 차례로 막대를 뛰어넘었다. 그렇게 몇 번 더 올리다가 결국 아이들이 그 광경을 목격했다. “아! 아! 화더!” 그는 웃으면서, 나는 너희가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더 높이 뛸 수 있으리라 믿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방금 너희가 내 생각이 맞았음을 증명하지 않았냐고 했다. 
그때 나는 이페오마 고모도 사촌들에게 똑같이 해 왔음을 깨달았다. 엄마가 자식한테 어떤 식으로 말하고, 무엇을 기대하는가를 통해 그 애들이 뛰어넘어야 할 목표를 점점 더 높였다. 아이들이 반드시 막대를 넘으리라 믿으면서 항상 그랬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됐다. 오빠와 내 경우는 달랐다. 우리는 스스로 막대를 넘을 수 있다고 믿어서 넘은 게 아니라 넘지 못할까 봐 두려워서 넘었다. – 274

캄빌리는 아버지를 그리워할 때 수치심을 느낀다. 이런 모순된 감정은 그녀가 본능적으로 아버지를 그리워하면서도 그런 감정이 옳지 않고 스스로에게도 해로움을 안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 373

처음 읽은 아프리카 출신 작가의 소설이다.
사실 아프리카에 작가가 있다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 알게되었다. 아니, 알려고 하지 않았던 탓이다. 작가는 노벨 문학상을 포함해 작가들에게 주는 커다란 상도 수차례 받은 사람이다.

스스로를 묶고있는 그것이 무엇인지, 혹은 정의라는 이름아래에 일어나고 있는 그 정의는 무엇인지에 대해서 묻고싶어졌다. 아니 그 정의라는 것 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사는것일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지난 여행에 우연히 열차에서 만났던 흑인 여자를 생각했다.

신을 넘어선 신이 되어버린 아버지와 그 아래에서 선이라 믿고있는 그 모든 일련의 행동들과 생각들이 혹 우리에게도 묻어있는 것은 아닐지…

무엇보다 이 소설을 일고난 직후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은 “나이지리아”에 여행을 하고 싶다는 강력한 욕구가 솟아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