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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이 있는 사진의 역사

다니엘 지라르댕, 크리스티앙 피르케르 지음, 정진국 옮김
2020년 6월 23일 완독

그 목적은 우선 정보적, 문화적이다. 이미지가 인간의 통신에서 중심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장의 사진은 진실하다는 추정으로 덕을 본다.  즉 사실의 객관적, 중성적 기록이라는 추정이다. 따라서 사진은 강한 ㅈ으거력과 또 비할 데 없이 확증하는 힘을 지닌다. 이런 힘이 실린 객관적 현실은 이미지의 메시지로 사용되면서 <연출>되거나 <수정>되기도 한다. 여기에서 사진에 실린 신빙성을 의심하게 만드는, 정보의 왜곡과 조작에 대한 끈질긴 의구심이 따른다. 게다가 디지털 혁명으로 영상에서 이와 같은 작업이 더욱 쉬워졌다. 이런 여건에서 모든 이미지를 비난하기에 앞서, 조작이나 겆시을 어디까지 수용할 것인지 그 수준을 결정하는 것이 합리적일 듯하다. – 13

이미지의 증거력은 개인과 집단의 지식에 따라 다양하다. 사진적 증거를 지지하든 않든 간에, 닐 암스트롱이 달에 첫발을 내딛은 사건은 오늘날 대다수 사람들이 확증으로 받아들이는 반면, 유령의 실재는 논란거리가 된다. 아무튼 <백문이 불여일견> 같다고 할 이미지로서 사진은 대중 매체로 소통하는 우리 사회에서 말과 글에는 없는 위력을 지닌다. – 15

나다르의 입장은 다른 예술과 마찬가지로 자기 작품을 보호받고 싶어하는 사진가의 의지를 맨 처음 예고한 것이었다. 또 그와 같은 사고방식은 저작자로서 인정받으려는 사진가들의 최초의 요구에 속한다. – 27

<모든 이미지는 상징이다. 누구든 즉시 현실을 접하게 한다. (……) 사실, 이렇게 사진으로 보는 것이 종종 현실 자체보다 더욱 효과적이다. 사진 영상속에서 불필요하거나 거추장스런 것이 제거되기 때문이다. (……) 사진에는 완전히 별개의 사실성이 있다. 다른 도해 형식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매력이다.> – 63

애당초 창조는 하느님의 몫이고 인간은 모방할 뿐이라고 확신했던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의 주인공이었으니까. – 75

이미지의 수정은 덧붙이든 덜어내든, 파리 코뮌이 증언하듯이 사진의 역사에서 한 부분이다. 1930년대의 전체주의 이전까지, 이런 ㅇ현상은 주변적이고 일시적이었다. 스탈린은 그것을 사실상 체계회했다. 그렇게 해서 실종의 미학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을 개발했다. – 99

몇몇 비평가는 각자의 인본주의적, 인류애적 의무를 상기시킨다. 이런 갈등의 현장에서 촬영하는 많은 사진가들은 구경만 하고 동조할 뿐, 도움을 주지 않았다는 비난을 들을 수 있다. 이런 비난에 대해 사진가들은 참혹한 광경 앞에서 수동적일 수밖에 없었던 형편에 대해, 정보와 증거를 내놓는 것으로 버틴다. 이런 잔혹한 수난을 대중에게 전하는 동안, 그런 사건과 또 그런 식의 사건을 비판하게 할 희망도 얻는다. – 179

그러나 문화적으로 그 결과는 완전히 달랐다. 유일한 것만도 아닌 이 사례는 예술계가 무기력하다는 느낌을 재확인해 주었다. 즉 어떤 예술 작품이 대중에 공개될 수 있고 어떤 것은 그럴 수 없는지 허락할 수 있는 잣대가 곧 법이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더욱 논쟁의 여지가 있던 것은 언론의 소란을 동반하는 경찰의 개입이 법적 판단에 선행한다는 점이다. – 227

이런 파괴력은 오늘날 이미지라는 뛰어난 통신 수단만이 지닌 특성이다. – 247

프랑스 사람이 쓴 책인데, 번역이 구글번역기로 한 것 같다. 이 정도 번역이라면 나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더 읽기쉽고 이해되는 문장으로 바꿀 수도 있었을텐데, 굳이 불어를 직역으로만 했어야 하는가에 대한 의구심이 많이 드는 책이다.
그러다보니 무슨 이야기인지는 알겠는게 공감을 하기엔 여러번 같은 문장을 읽으며 우리글이지만 머릿속에서 번역(?)하는 과정을 한 번 더 거쳐야하는 어려움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