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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살 반야심경에 미치다

2020 6 8완독

반야심경 260자

이것은 반불교다! 이것은 불교가 아니다! 이것은 불교의 모든 논리를 근본에서부터 파괴하는 전혀 새로운 논리다! 불교를 불교다웁게 만드는 모든 그룬트Grund(땅바닥, 근거, 기초)를 파멸시키는 다이나마이트다! 불교라는 종교가 도대체 어떻게 돼먹은 종교냐? 종교가 반종교의 논리를 자기의 최상의 언설로서 모시고 있다니! – 22

제도화 된 종교의 규범은 인간에게 덮어씌워진 겉껍데기라는 것! 껍데기는 가라! 나는 그 체험을 통하여 목사의 옷도 벗었고 스열의 옷도 벗었습니다. 그리고 무전제의 철학의 길만을 고집하며 여기까지 달려왔습니다. – 26

기실 대규모 살생을 목적으로 남의 나라를 침범하는 왜군을 죽이는 것은 살생이라는 개념에 해당될 수가 없습니다. 선종의 교리로 본다면 죽이는 자나 죽임을 당하는 자나 모두 공空일 뿐, 오직 더 큰 살생을 막는 헌신이 있을 뿐이죠. – 31

나의 도반 명진이 “진짜 중”이라는 말 한 마디를 하고파서 얘기가 여기까지 면연케 되었는데, 경허의 삶의 이야기를 마감 짓기 전에 몇 가지 일화만 소개할까 합니다. – 70

방하착 이야기 – 70

사미를 괴롭혔던 것은 여인이라는 물체가 아니라, 여인에 대한 사미의 의식이었고, 그 의식의 집중을 일으킨 집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내려놓아도 될, 아무런 문제도 일으키지 않을 짐이었습니다. 짐을 내려놓고 가볍게 걸어가면 될 텐데 계속 짐을 지고 가는 것이지요. – 77

“유치하다 childish”하는 것은 열등한 도그마의 절대적 선을 주장할 뿐이라는 것이죠. – 192

가애가 없어지면 어떻게 될까요? 보살은 마음에 걸림이 없고 장애가 없기 때문에, “공포恐怖”가 사라집니다. 공포란 무엇일까요? 공포란 결국 나의 생명이 위협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지요. 다시 말해서 신체적 위협은 매우 직접적인 공포이지요. 다음으로 재산이 없어질 것 같다, 이것도 공포지요. 또 있습니다. 명예가 실추될 것 같다. 이것도 공포지요. 또 있지요. 권세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 내 아름다운 얼굴이 늙어서 추하게 될 수 있다! 이러한 공포 때문에 인간은 세속의 악바리 같은 집념에 매달리지요. 그러나 반야의 완성을 체득한 사람에게는 이러한 공포가 없다! 이 얼마나 위대한 축복입니까? 공포가 없을 뿐이 아니지요. 전도顚倒된 몽상夢想을 멀리 떠나게 된다는 것이지요. 전도란 무엇입니까? 거꾸로 보인다는 뜻이지요. 몽상이란, 현실이 아닌, 망념에 의하여 지어내는 환상이지요. 공포에는 외마外魔가 있고 내마內魔가 있습니다. 내마는 꼭 몽상을 지어내게 마련이지요. – 229

바로 모든 이념에서 벗어난다고 하는 것이 반야의 부정이었습니다. – 232

무상無常을 상常으로 생각하고, 가유假有를 진유眞有로 생각하고, 변화를 불변으로 착각하는 보수의 그릇된 견해가 중생을 공포恐怖에 떨게 하고, 전도顚倒된 생각을 갖게 하며 꿈같은 허망한 상념에 사로잡히게 만드는 것이죠. – 232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보리사바하”

“가떼 가떼 빠라가떼 빠라상가떼 보드히 스바하 gate gate paragate parasamgate bodhi svaha”

“건너간 자여, 건너간 자여! 피안에 건너간 자여! 피안에 완전히 도달한 자여! 깨달음이여! 평안하소서!” – 238

도올의 책은 정독으로 두 권째 읽었다. 그의 책은 본론으로 들어가기까지의 이야기가 참 많다. 그것이 좋은지 그렇지 않은지는 아직 판단할한만 능력이 안되지만 그의 지식과 통찰력에 깊은 감명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