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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나물 국

대파는 어슷썰기로 녹색부분이 들어가 있어야하고, 콩나물의 비린내를 감추기 위한 마늘은 다졌다고 하기엔 뭣할만큼 투박한 모양으로 들어가 있어야 한다. 내 손가락 두 마디 길이의 멸치가 다듬어 지지 않은 채 통째로 들어있어야 하며, 국물은 투명한 홍시의 색을 띠고 있고, 하얀색 국그릇 바닥에 가라앉은 고춧가루는 곱지도, 거칠지도 않은 크기여야한다.

그렇다. 

우리 엄마가 끓여주던 콩나물국의 모습이다.

그 맛은 기차게 시원하고 비릿하지 않으며 국물과 함께 입안으로 들어오는 콩나물의 대가리와 줄기는 부드럽지도 아삭하지도 않아야 한다. 콩나물의 잔 뿌리는 그대로 살아있어야 한다. 세상의 모든 자식들이 그러하듯 우리엄마의 콩나물국은 세상 최고의 맛이었다. 

엄마가 주방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난 그곳에 함께 있곤했다. 책을 본다던가 엄마와 대화를 한다던가 하는것 말이다.

저녁식사를 준비해야하는 시간이 다가오면 부엌의 창문 사이로 비스듬하게 들어오는 햇살은 내가 앉은 식탁에 해 그림자를 만들고 있었고, 난 그 귀퉁이에 앉아 엄마가 저녁을 준비하는 모습 보는 것을 좋아했던것 같다. 적당히 습한 주방의 공기와 칙칙거리는 압력밥솥의 소리를 듣는 것도 좋아했고, 도강도강 소리를 내던 도마의 소리도 좋아했다. 발발거리는 냄비에 무언가가 끓고있는 소리도 좋아했고, 식탁에 수저가 차려지는 짤랑거리는 소리도 좋아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엄마가 저녁을 준비하는 그 모습을 좋아했다. 아니 사랑했던 것 같다.

지금은 그 소리를, 모습을, 그리고 그 냄새와 맛을 다시는 느낄 수 없다.

느낄 수 없다는 것 보다 느끼지 못한다는 말이 지금 나에겐 더 쉬운 말일지 모른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몇 년 후, 아버지와 잠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나눌 기회가 아니라 내가 그 기회를 만들었다고 하고싶다. 퇴근 후에 아버지와 시간을 더 많이 나누려 노력했던 기억이 있으니 말이다.

어느날 아버지와 음식 이야기를 하다가 아버지가 그랬다.

“네 엄마가 끓여주던 콩나물 국이 먹고싶구나.”
“저두요. 얼마 전부터 엄마가 해주던 콩나물 국이 생각났어요. 저도 그 맛이 기억나요.”

그렇게 몇마디 주고 받았다. 

몇일 후 퇴근하고 와보니 아버지는 항암치료로 기력이 없으셨는지 그대로 주무시고 계셨고, 난 주방에서 간단히 요기를 할 요량으로 라면을 찾았는데, 쓰레기통 한가득 버려져있던 반쯤 익어버린 콩나물 한 무더기를 봤다. 커다란 쓰레기통의 거의 절반정도를 차지하고 있던 반쯤 숨이 죽어있는 콩나물. 

그래, 그랬던거다. 

아버지는 엄마가 끓여주던 콩나물 국을 만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맛이 나지 않았던 것이고, 그래서 수차례 실패를 했던 것이다. 나를 위해서 그리고 아버지를 위해서…

몇일 뒤, 아버지는 나에게 이렇게 얘기해 주셨다.

“네 엄마가 해주는 그 맛이 나지 않는구나.”

그리고 얼마 후 말씀조차 할 기력이 없던 아버지는 미안하다는 글자를 내 손바닥에 써 주시고 엄마를 만날 수 있는 곳으로 가셨다.

나에게 콩나물 국이란 밥을 한번 먹기위한 평범한 밥상의 국이 아닌, 내 엄마와 아버지의 사랑이다.

콩나물 국은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