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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세계여행 – 바르셀로나

2019년 11월 29일 ~ 12월 4일(5박 6일)

나에게는 올림픽, 황영조 마라톤 몬주익으로 더 익숙한 바르셀로나에 도착을 했다.

바르셀로나를 이번 여행에 꼭 들러야겠다고 결정한 계기는 1년 전 스쿠버다이빙 Open Water 라이센스 취득을 위해서 여행을 했던 푸켓에서 나와 함께 강습을 받았던 버디에게 들었던 이야기 때문이다.

저녁시간에 각자가 여행을 했던 곳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바르셀로나에서 ‘가우디 투어’를 해 보았는데 그 느낌이 너무 좋다며 강력히 추천을 해 주었고 그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다가 언젠가 유럽게 가게되면 꼭 가우디 투어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건축가 가우디에 대해서 잠시 이야기를 하자면 자연을 닮은, 자연과 동떨어지지 않은 건축을 하고자했던 건축계의 이단가라고 이야기를 할 수 있을것 같다. 스페인 까탈루냐 지방에는 그가 만든 유명한 건축물들이 모두 자연을 닮아있다. 아니 자연 그대로라고 해도 될 수 있을 정도이다. 고딕양식, 직선으로만 되어있는 건물들 사이에서 아주 자연스럽고 화려한 곡선을 이용한 건축물이 자리하고 있다. 

피렌체의 미켈란젤로가 메디치가문을 우연히 만난것 처럼 가우디를 후원해준 사람인 구엘가문을 잘 만난 이유도 있을것 같다.  가우디의 천재성을 알아본 구엘이라는 사람의 후원으로 그의 건축물이 더 빛을 발할 수 있었다고 한다. 

파리만국박람회에서 장갑을 진열하는 테이블을 만들었던 가우디를 알아본 구엘이 저 테이블을 만든 사람을 만나보고 싶다고했고, 그렇게 그 둘의 인연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천재를 알아보는 안목을 가진 후원자가 나타난다.

만국박람회에 출품한 장갑을 본것도 아니고 그 장갑을 진열해둔 테이블을 보고 그 솜씨를 알아본 구엘이라는 사람의 안목이 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르셀로나는 안도라공국을 통해서 들어가려했다가 일정이 변경되면서 급하게 2박을 해야하는 숙소를 찾아보게 되었고 2박을 하는 숙소는 저렴한 호텔에서 묵었고 나머지 3박은 에어비앤비를 통해서 묵게되었다. 

성 가족성당으로 불리는 사그라다파밀리아(Sagrada Familia)를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에 첫 숙소를 예약했다. 이동이 아주 편했고 주변에 식당과 마트도 제법 있었다.

바르셀로나로 들어오면서 우리는 아주 마음이 편해졌다.

긴 여행의 끝이 보이는 이유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늦게까지 문을 열고 있는 식당과 24시간 운영하는 마트가 군데군데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아주 마음편히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또 여행 중에 처음으로 호텔 조식을 신청해서 먹었던 것도 여행의 막바지에 아주 좋은 선택이었다.

바르셀로나에 도착해서 바로 가우디투어에 참여했다.

가우디의 흔적과 가우디가 직접 건축한 건물들을 둘러보면서 설명을 들어보니 더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혹시 가우디가 미켈란젤로의 환생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제일 처음에 들렀던 곳은 카사 바트요의 외관이었다. 

카사는 집이라는 뜻이고 바트요는 사람의 이름이다. 즉 “바트요의 집”이라는 뜻이다. 바트요라는 사람이 가우디에게 건축을 의뢰했다는 의미가 된다.

그 외관은 마치 해골로 장식을 해 둔것 같았고 주변 건물들과의 모습은 아주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웃하고 있는 집들은 전통적인 유럽 건물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반해서 카사 바트요는 곡선으로 이루어진, 마치 장난감 마을의 사탕으로 만든 집처럼 알록달록한 외관에 물위에 떨어뜨린 한 방울의 잉크가 퍼지는 것 처럼 아주 미려한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후에 카사 바트요는 내부관람도 신청해서 다시 방문을 할 수 있었다.

스페인어 카사는 거주를 위한 공간을 위미한다.

그 다음으로는 카사 밀라의 외관을 보았는데, 이 건물 역시 곡선으로 이루어져서 주변의 건물과는 아주 달라 보였다. 테라스의 난간은 마치 해초가 물 속에서 춤을 추는 모습처럼 느껴졌고 파도가 넘실대는 모습의 외벽과 더불어 아주 잘 만들어진 해변의 모래성 같은 느낌이었다. 카사 밀라는 설계를 한 후에 그 모형을 축소하여 똑같은 비율로 채석장에서 돌을 잘라와서 그대로 쌓아올려 완성한 건물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건축되었던 당시에는 그 모습이 너무나 색다르고 기괴해서 채석장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렸었다고 한다. 또한 옥상에 있는 굴뚝은 조지루카스가 만든 영화인 스타워즈의 다스베이더와 흰색 병사인 트루퍼의 투구의 디자인에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카사 밀라의 1층에 있는 카페에 들러서 커피를 마셨는데 그 천정의 모양이 바닷물이 모래사이로 빠져나간 느낌이라 마치 내가 거꾸로 앉아있는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구엘가문의 가족성당으로 건축된 콜로니아 구엘도 투어 코스에 들어있어 방문해 볼 수 있었다. 카사 바트요와 카사 밀라는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콜로니아 구엘은 아무런 예비지식이 없이 방문했는데 미완성된 곳이라고 하기에는 소박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아주 작은 느낌의 지하성당인데 가우디가 가지고 있던 건축에 대한 철학을 조금은 더 깊게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숲속의 작은 동굴속에 놓여있는 나무등걸에서 명상을 하고 있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방문을 했을때에 다른 투어팀도 있어 사람이 상당히 많은 느낌이었는데 그 혼잡스러움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나와 몇몇 사람만이 그 성당에 앉아있는 느낌이 들었다. 

성가대석이 제대 뒷편, 2층에 있는 것도 새로웠고 검정색 나무로 조각해 놓은 검은 아기예수와 성모마리아가 더욱더 새롭게 느껴졌다. 환기를 위해서 나비의 날개처럼 열리고 닫히는 스테인드글라스도 너무 아름답게 느껴졌다. 더불어 자신들의 가족들을 위한 성당을 지을 정도면 얼마나 돈이 많았던 것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이 성당이 있는 지역이 그 당시에 구엘가문의 방직공장이 있던 지역인데 그 당시 직원들을 위한 거주지와 숙소, 학교를 비롯한 편의시설들을 지어놓은 마을이 바로 옆에 있을 정도니까 말이다.

콜로니아 구엘에 아주 작은 박물관이 있는데, 그 곳에서 가우디가 건물을 설계할때에 고안했던 방법에 대한 설계를 볼 수 있었다. 중력과 작은 쇠사슬을 이용해 그 위치마다 기둥을 세웠고, 그렇게 설계하고 만들게된 아니 아직도 만들고 있는 사그라다파밀리아를 볼 수 있었다.

사그라다파밀리아는 100년이 넘도록 아직도 계속 짓고 있는 성당이다. 3개의 파사드-성당의 외부벽면- 중에 이제야 2개를 완성했는데, 현재 입구로 사용하고 있는 탄생의 파사드와 4개의 첨탑은 가우디가 직접 만든 것이고 나머지는 그 당시 남겨두었던 설계도와 기록을 가지고 계속 만들고 있는 중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총 14개의 첨탑이 올라가게 되는데, 3개의 파사드 쪽에 있는 4개씩, 총 12개의 첨탑은 예수의 제자인 12사도를 의미하게 되고 가장 높은 첨탑은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성모마리아를 의미한다고 한다. 가장 높은 첨탑을 둘러싸고 있는 4개의 첨탑은 4복음사가인 마태오, 마르코, 루가, 요한을 의미한다.

바르셀로나에 도착한 첫 날 저녁식사를 위해서 숙소를 나섰다가 갑자기 눈에 들어온 엄청난 위용의 성당을 보고 위압감을 느꼈다. 아주 거대한 탑이 한 눈에 들어오지 않는 크기로 나를 내려다보는데 마치 어릴적 꿈에서 보았던 태권브이에게 압도되는 느낌이었다.

사그라다파밀리아가 완공이 되고나면 주 출입구와 양 측면의 2개의 출입구가 생기게 되는데, 현재는 2개의 출입구만 완성이 되어있다. 하나는 현재 입구로 사용되고 있는 가우디가 생전에 만들어둔 탄생의 파사드이고 다른 하나는 출구로 사용하고 있는 죽음의 파사드라는 곳이다. 아직 주 출입구는 만들고 있는 중이다. 주 출입구는 영광의 파사드라는 이름이 붙게된다. 

입구에서부터 엄청나게 붙어있는 조각들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그 조각의 의미로 탄생, 영광, 죽음의 파사드라는 별칭이 붙어있다. 조각이 되어있는 파사드의 위용이 엄청나서 가지고 있는 핸드폰으로는 아무리 잘 찍어도 그 느낌을 다 담을 수 없었다. 혹 다음에 다시 한 번더 가게된다면 조금 성능좋은 카메라와 렌즈를 들고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탄생의 파사드에 조각되어있는 석상들의 크기는 실제 사람의 비율과 똑같이 만들었는데, 그 당시에 실제 모델을 섭외해서 석고로 본을 뜬 후에 돌로 조각을 했다고 한다. 어른들의 조각은 그렇게 했고, 아기들의 모습은 병원 영안실에 사망한지 얼마 되지 않은 영아들의 시신을 이용했다고 했는데, 가우디가 부탁을 했을때에 거절을 하던 병원장이 ‘신에게 바치는 작품, 성당을 만든다’는 이야기에 설득되었고 아이들의 시신을 이용해서 조각을 완성할 수 있었다고 한다.

탄생의 파사드에는 예수의 탄생부터 공생활(예수가 공적인 활동을 했던 죽기 3년 전까지 기간)을 하기 전까지의 30년에 대한 이야기가 조각되어있다. 반대편의 죽음의 파사드에는 예수가 가롯 유다의 밀고로 잡혀가고 빌라도 총독에게 사형언도를 받는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십자가에 못박히고 무덤에 묻히는 이야기까지가 조각되어있다. 

죽음의 파사드는 가우디 사후에 여러 예술가들의 의견에 따라 조각이 되어있는데 탄생의 파사드가 실물과 가깝게 조각되어있다면 죽음의 파사드는 조금은 추상적인 느낌으로 묘사가 되어있다. 또한 제일 상단의 십자가는 건축자재인 H빔을 이용해서 만들어져있는데, 흔히 보는 십자가가 벽에 붙어있는게 아니라 십자가가 땅을 보면서 벽에 꽂혀있는 모양이라 아래에서 올려다 보았을때 자연스럽게 십자가가 보이도록 만들어 둔것도 인상에 많이 남았다.그 십자가에 매달려있는 예수의 모습은 성당내 제대 뒷편에 걸려있는 예수의 모습과 닮아있는 것도 의도한 조각이 아닐까 싶었다.

가우디는 노년에 성당건축과 산책, 그리고 성당에 기도를 드리는 일만 반복하며 지내고 있다가 성당을 다녀오는 길에 전차에 치어서 생을 마쳤다고 전해진다. 그때 전차의 운전수는 노숙자인줄 알고 제대로 처리를 하지 않았고 경찰이 발견해서 병원을 옮겨다니다가 마지막 병원에서 결국 숨을 거두게 되었다고 한다. 천재의 마지막은 늘 이렇게 끝나는것 같다는 생각이들었다. 본래 가톨릭에서 교회의 무덤에는 성직자들만 들어갈 수 있지만 교황청의 특별배려로 가우디의 무덤이 사그라다파밀리아 성당의 지하에 모셔져있다.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도 아주 멋지게 만들어져있는데 아침에 동이틀때에는 푸른빛의 스테인드글라스로 만들어져있는 탄생의 파사드 쪽에서 햇볕이 들어오고 저녁이 되면 붉은빛으로 만들어져있는 죽음의 파사드 쪽에서 빛이 들어와 성당내부의 색을 바꾸주고 있었다. 한 낮의 빛이 들어오게되는 영광의 파사드는 어떤 색으로 만들어질지도 궁금했다.

2026년, 가우디 서거 100주년을 기념해서 성당의 완공을 목표로 열심히 만들고 있다고하는데, 과연 가능할지 모르겠다. 현대의 기술로 서둘러 만드는 것은 가능하지만 가우디가 설계한 도면이 충분하지 않고 글로 써둔 내용을 해석하고 벽면을 어떻게 꾸며야할지 예술가들의 조언을 구하는 것도 쉽지는 않은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현재 이미 완공을 하고도 남을만큼의 자금은 확보를 해 두었다고 한다. 커다란 기부금이 아니라 이 성당의 입장료를 모아서 성당을 건설하고 있다고하니 나도 사그라다파밀리아의 건축에 벽돌 한 장 정도는 기부한 셈이 된다. 

성당의 스테인드 글라스에는 세계의 유명한 성인들의 이름이 새겨져있는데, 그 중에 우리나라 출신의 성인 이름도 써 있는걸 찾을 수 있었다. 바로 우리나라 첫 사제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이름이 “A, KIM”이라고 정확하게 쓰여있었다. 뿌듯하면서도 가우디가 우리나라 성인을 기억하고 있었다는게 무엇보다 뭉클했다.

가우디와 구엘이 전원주택 단지를 조성하기 위해서 만든 지역이 있는데, 지금은 구엘공원이라 불리는 곳이다. 처음엔 전원주택 단지를 만들어 부자들에게 분양을 하려했는데 지금은 도심에 있지만 그 당시에는 타운과 떨어져있었고 마차를 이용해서 오가기에는 너무나 먼 거리이자 언덕위에 있어서 살기가 불편해서 그 사업에는 실패를 했었다한다. 실제로 구엘과 가우디, 그리고 구엘의 변호사가 거주를 하기는 했었지만 지금은 모두 용도가 변경되어 다른 것으로 사용되고 있다. 다만 공원을 둘러보면서 가우디의 건축철학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이야기가 담겨있는 넓은 광장과 시장으로 사용하려고 만들어둔 공간, 그 공간 위에 있는 공터와 벤치, 그리고 비가내리면 공터로 스며든 물이 저장되어있다가 아래로 흘러내려 작은 분수를 이루고 있는 곳까지, 멀리 보이는 수평선과 맞춰놓은 기둥들의 배열 그 모든 것들이 실제로 눈으로 보지 않고 느껴보지 않고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지금이야 건축가들과 예술가들이 종종 시도하고 있지만 타일을 깨트려 곡선과 굽은 면을 덮고 있는 모자이크도 촌스럽거나 유치하지 않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실제 인부들을 앉혀가면서 설계했다는 세계에서 가장 긴 벤치에 앉아보았는데, 실제 인체를 모델로 디자인해서 그런것인지 허리를 딱 받쳐주는게 아주 편안했다. 그 곳에 앉아서 가운데 공터에서 공연을 보려고 디자인 했다는데, 실제로 타운이 조성되고 완공이 되었다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대중들에게 공개되지는 않았을것 같았다.

공원만 보더라도 가우디는 자연을 그대로 옮겨서 건축을 하려고 노력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분명 인간이 설계하고 인간이 만든 곳인데 인공적이라는 느낌보다는 자연속에, 숲속에 들어와있는 느낌을 더 크게 받을 수 있었다. 

바르셀로나에 도착을 한게 여행을 시작한지 70일째가 되는 날이었는데 머리결도 많이 상해있었고 덥수룩한 머리가 보기 싫고 거슬렸다. 유럽의 미용실이 비싸다는 이야기만 들었던터라 자르고 싶어도 눈에 보이는 곳에 들어가기가 어려웠는데 우연히 지나다가 봤던 미용실에 커트와 머리감기가 합쳐서 14유로라는 간판을 보게되었고 처음으로 외국에서 그것도 유럽에 이발을 할 수 있었다.

사실 어떻게 잘라달라고 해야할지 몰라서 번역기를 통해서 ‘당신의 생각에 나에게 가장 잘 어울리게 해주세요. 단지 머리카락의 끝부분이 상했어요. 없애주세요.’라고 이야기를 전했고, 나에게 배정된 헤어디자이너는 조금은 서툴지만 아주 훌륭하게 컷트를 해 주었다. 다만 솜씨가 서툰 디자이너였는지 가위질을 하다가 자신의 손을 조금 베어버리는 실수도 있었지만 유럽에서 머리를 잘랐다는게 색다른 경험이었다.

바르셀로나에서 먹은 식사 중에 아주 멋진 식당이 있어 기록해두려고 한다. 

바르셀로나에 대여섯 군데 있는 해산물 식당인데 주문부터 조리하는 과정이 조금 색달라서 재미있었고 맛도 아주 좋아서 기억에 많이 남는다. 

La Paradeta라는 해산물 전문 식당인데 두 번을 방문했는데 각기 다른 지점으로 가서 먹었지만 모두 맛이 좋았다. 제일 맛이 있었던 것은 “클라라”라고 부르는 레몬맛 맥주인데, 알콜 도수도 낮고 비릿한 해산물과 아주 잘 어울리는 맛이다.

입구에서 잔뜩 진열되어있는 해산물을 내가 먹고 싶은만큼 주문을하고 조리방법도 구이, 튀김, 찜 등으로 선택을 할 수도 있다. 그러면 나에게 고유번호를 알려주는데 이 번호는 식당을 나갈때까지 나에게 붙어있는 고유번호가 된다. 옆으로 자리를 옮겨 카운터에서 맥주, 와인 등 음료와 함께 먹을 스프나 빵을 함께 주문하고 내 고유번호를 이야기하면 결제를 하면서 내 번호가 찍혀있는 영수증을 함께 준다. 그리고 자리를 잡고 앉아서 내 번호를 부르면 주방 창구에 영수증을 가져가서 보여주고 받아와서 식사를 할 수 있다. 

처음 갔던 지점은 두 번째 지점보다 규모도 크고 손님도 많았는데 번호를 스페인어와 영어로 함께 불러줘서 수월하게 먹을 수 있었던 반면 두 번째 지점은 조금 작은 규모였지만 스페인어로만 번호를 불러주었는데 손님이 적어 주인 아저씨가 우리를 잘 챙겨준 덕분에 더 편하고 기분 좋게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내 입에 가장 맛이 좋았던 요리는 우리나라 남쪽 지방에서 “호래기”라고 부르는 새끼 오징어, 꼴뚜기 튀김이었는데 어릴적 아버지와 함께 동네 시장에서 사다가 손질해서 초장을 찍어먹던 생각이 많이 나는 음식이었다. 와이프가 여행내내 먹고 싶어하던 왕새우구이도 실컷 먹었는데, 우리나라 대하보다는 못하지만 짭쪼롬한 버터에 구워져 나오는 맛이 아주 좋았다.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라면 사그라다파밀리아 성당과 더불어 카사 바트요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카사 밀라와 카사 바트요 두 곳 모두 내부에 들어가서 직접 경험해보고 싶었던 곳이었다. 바르셀로나에 가기 전, 파리에서 유튜브를 통해서 미리 정보를 접했었는데, 카사 밀라에 현재 거주하고 있던 할머니가 나와서 매일매일이 다른 느낌이라면서 가우디가 만들어둔 의자에 앉아서 인터뷰를 하는 장면이 있었다. 우리는 둘 중에 한 군데를 가야한다면 어디가 더 좋을지 고민을 하다가 결국 카사 바트요로 결정을 했다.

카사 바트요에 아침 일찍 가는게 좋을 것 같아 아침 9시 입장으로 예약을 해 두었다. 

“직선은 인간이 만든 가장 완벽한 선이고, 곡선은 신이 만든 가장 완벽한 선이다.”

가우디가 한 말처럼 가우디의 건축물에는 곡선이 아주 많다. 아파트를 선호하고 주어진 곳에서 어떻게해서든 맞춰서 살고 있는 우리가 보기엔 외부도, 내부도 곡선이 아주 많은 네모난 방도, 사각으로 만들어진 벽도 없는 곳에서 가구를 배치하고 거주하기엔 불편함이 많은 것 같지만, 그 내부에서 보는 모습은 끊임없이 상상력을 자극하고 생각을 자극하다보니 창의적인 생각이 끊임없이 나올것 것만 같았다. 

카사 바트요는 마치 물 속에 들어와있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스쿠버다이빙을 하다가 수면을 바라보았을때의 느낌 그대로를 느낄 수 있었다. 건축을 자연그대로, 자연을 흉내낸 것이 아니라 빛을 이용하고 그 빛을 받으며 사는 사람들을 위해서 채광부터 시작해서 보이는 모든 곳들이 사람을 위해서 만들어져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1층의 입구에서부터 채광창은 거북이의 등껍질을 본따서 만들어져있었고, 물방울과 파도가 칠때의 거품이 일어나난 모습을 본 딴 색색의 유리창이 아름다웠다. 계단에 있는 유리창도 안과 밖을 구분하기 위한 용도만이 아닌 물 속에서 밖을 보거나 얕은 호수에서 알록달록 자갈이 깔려있는 물 속을 보는 것 같은 느낌으로 만들어져있다. 가우디는 본래 대장장이의 집안에서 태어났기에 철을 잘 다루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지만 유리와 타일까지 생각을 했다는 것 또한 엄청난 노력이거나 혹은 천재이거나…

물 속에 들어와있는 느낌이 나는 유리창

카사 바트요의 옥상에는 바르셀로나가 속해있는 카탈루냐 지방의 설화에 대한 이야기가 건물에 녹아있다.

아주 오래전 카탈루냐 지방에 살고 있는 아주 포악한 용이 있었는데, 이 용의 노여움을 달래기 위해서 매년 2명의 여자를 무작위로 추첨을 해서 제물로 바쳤다. 그런데 카탈루냐의 공주가 추첨에 뽑히게되어 용의 제물로 바쳐졌는데, 조르디라는 기사가 나타나서 그 용을 무찌르고 공주를 구했고, 그 용의 피가 스며든곳에서 장미가 피어났는데, 그 장미로 기사가 공주에게 사랑을 고백했다고 한다. 그 날이 4월 23일이고 그 날을 성 조르디의 날이라고 기념하면서 카탈루냐 지역에서는 그날 남자는 여자에게 장미를 선물하고 여자는 남자에게 책을 선물하면서 사랑을 고백한다고 한다.

카사 바트요 욕상은 그 이야기 속의 용의 모양과 그 용을 무찌른 기사의 창 모양이 담겨져 있다. 또한 가우디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기에 그의 건축물 곳곳에서 십자가를 볼 수 있는데, 평면적인 모양의 십자가가 아니라 사방에서 보아도 십자가로 보이는 모양의 십자가를 디자인해서 설치해 둔 것도 볼 수 있었다.

카사 바트요의 중정은 푸른색 타일로 장식이 되어있는데, 그 색을 자세히 보면 아래로 내려갈 수록 그 색이 옅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수심이 깊어질 수록 빛이 덜 들어와서 점점 어두워지는 모습을 그대로 표현해 둔 것을 알 수 있다. 가우디는 건축가였지만 빛을 이용하고 빛에 대해서 아주 잘 아는 사람이었던 것이 틀림없다. 

카사 바트요의 전망대에서 외부에 있는 카메라로 사진을 촬영해서 그 사진을 판매하고 있었는데, 마치 우리나라 놀이공원의 롤러코스터에서 촬영한 사진을 마지막 출구에서 찾아가는것과 비슷했다. 그 사진을 전시해두고 있었는데, 우리에게는 낯선 모습, 또 재미있는 사진들이 있어서 사진을 남겨보았다.

바르셀로나는 바다와 접하고 있어서 많은 시민들이 운동도하고 조금 추워지는 계절이었지만 서핑도 배우고 있었다. 그 바다를 가는 길에 재래시장이 있어 잠시 들러보았는데, 그 곳에서 맛 보았던 석화의 맛이 잊혀지지 않는다. 주문을 하면 그 자리에서 손질을 해서 접시에 담아주는데 아주 커다란 석화 3개가 단돈 7유로, 우리돈 약 만원정도였다. 레몬즙을 뿌려서 그대로 후루룩 마셔버리는 석화의 고소함에 그 자리에서 두 번을 더 주문해서 먹었다. 글을 쓰는 지금 조금 더 먹고왔으면 아쉬움이 덜할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든다.

재래시장에서 만난 모습 중에 우리에게 친숙한 선지, 곱창, 허파, 염통등을 파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그 사이에 양 머리를 가죽만 벗겨서 그대로 판매하고 있었다. 주인에게 양이냐고 물었더니 양 머리라며 아주 맛이 좋다고 했다. 인터넷으로 어떻게 요리하는지 찾아보았더니 통째로 넣고 삶아서 아주 특별한 날에 가족들이 먹는 요리재료라는 설명이 있었다. 

제법 유명한 벼룩시장이 있다길래 방문해 보았다. 3층으로 되어있는 시장이었는데, 실제로 엄청나게 많은 골동품들을 팔고 있었다. 아주 오래된 잡지부터 자동차의 엠블럼, 오래된 영화필름도 판매를 하고 있었는데, 혹시 저 필름들 사이에 우리나라의 오래된 영화가 숨어있지 않을까 하는 쓸데없는 상상도 해 보았다.

어릴적 아버지께서 해외출장을 다녀오시는 길에 어머니께 선물로 사 주셨던 미니향수 셋트를 발견할 수 있었다. 손가락 두마디가 채 되지 않는 크기의 향수들이 예쁘게 생긴 병에 담겨 있는데, 이 녀석을 살까말까 망설이다가 결국 그대로 놔두고 돌아섰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가격이라도 흥정해 볼껄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바르셀로나 앞 바다

바르셀로나가 속해있는 카탈루냐 지방은 현재 스페인에서 독립을 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그 때문에 가끔 시위를 하고 있다는 뉴스를 접했었는데, 다행이 우리가 방문했던 시기에 시위는 없었다.

하지만 분리독립을 원하는 주민들은 집에 카탈루냐 깃발과 함께 분리독립을 원한다는 리본도 붙여놓고 있었는데 그 리본이 우리에게 익숙한 노란 리본의 모양이라 그 당시에는 오해가 조금 있었다고 한다. 

저녁무렵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북소리가 들리길래 건너편을 봤더니 시위를 하는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카탈루냐 깃발이 보이지 않길래 시위는 아니겠다 싶어서 조심스레 다가가보았는데 우리나라 치우천왕과 비슷하게 생긴 옷을 입은 사람들과 북을 치고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북소리로 악귀를 쫓아내는 마을의 작은 축제

한참 구경하다가 무슨 행사인지 물어보았더니 다음날부터 대림시기(성탄절이 오기 4주 전, 님이 오는것을 기다린다는 뜻으로 몸과 마음, 영혼을 준비해서 기쁜 마음으로 예수님을 기다리는 시기로 가톨릭의 전례력이 시작되는 시기, 즉 가톨릭의 새해)가 시작되기에 악을 쫓아내는 의미로 북소리를 내면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

다른 여행지에 비해서 짧은날 동안 바르셀로나에 머물렀는데 이렇게 쓸 말이 많은걸 보면 피렌체와 더불어 다시 한번 가보고 싶은 곳이라는 생각이다. 다시 가게된다면 사그라다파밀리아에는 하루 종일 머물면서 아침과 저녁의 태양의 위치에 따른 성당의 색변화도 보고싶고 입장을 못했던 카사 밀라에도 들어가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