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닫기

어쩌다 세계여행 – 이탈리아 로마

2019년 11월 6일 ~ 11월 18일

가톨릭을 모태신앙으로 가지고 있기에, 로마와 바티칸 시티는 아주 특별하게 생각되는 도시이다.

피렌체에서 이탈리아의 고속열차를 이용해서 2시간 남짓 걸리는 시간동안 날씨가 참 좋았다. 하늘도 너무 멋졌고 간혹 보이는 구름도 우아하게 다가왔다. 피렌체에 머무는 동안은 매일같이 흐리고 비가 오더니 우리가 피렌체를 떠나는 그 날은 하늘이 기가막히게 좋았다.  

로마로 가는 길에 본 하늘

로마 테르미니역(Roma Termini)에 도착했을 때의 첫 인상은 ‘로마는 너무나 지저분하다’였다. 바닥은 온통 버려진 휴지조각이었고, 쓰레기통은 넘쳐나고 있었다.   

숙소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서 조금 걷다가 보니 환경미화원으로 보이는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 대여섯이 모여서 웅성거리고 있었다. 아마도 청소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었는데, 몇일 후 현지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청소 노동자들의 파업이 맞다고 했다. 가끔 대중교통도 파업을 하는데 예고나 통지, 안내도 없이 갑자기 파업을 한다고 한다. 지하철을 타고 가야하는데 갑자기 사람들이 웅성거리면 어김없이 지금부터 4시간 동안 파업이라고 다들 나가라고 한다고 한다.

로마에서는 노동자의 파업이 종종 있다

로마에서는 조금 오래 머물면서 로마를 그대로 느껴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12박을 하기로 했고, 바티칸과 가까운 곳에 숙소를 예약해 두었다. 오후 4시쯤 도착한 숙소 앞에는 주인 아저씨가 나와서 우리를 반겨주었고, 숙소는 4명이 사용하기에도 충분한 공간이었다.

당연히 주방이 있었고, 화장실에 작은 세탁기도 갖추어져있었다. 무엇보다 현지인들이 거주하는 마을 한 가운데에 우리 숙소가 있다는게 더 맘에 들었다.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이웃들과 인사를 주고 받을 수 있었고 지나는 골목길에서도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며 지낼 수 있었다.

머무는 동안 사용하게될 주방기구들을 살펴보다가 코팅이 벗겨져버린 프라이팬을 발견하고 아저씨에게 문자로 이야길 했더니 우리가 외출해 있는 동안 집주인 아저씨가 새 프라이팬을 장만해 주셨다. 더불어 우리가 머무는 동안 사용할 화장지도 갖다 주셨다. 

로마는 저녁시간이 되니 피렌체와 마찬가지로 동네가 조용해졌다. 동네에 있는 제법 규모가 있는 슈퍼마켓도 저녁 8시가 되면 문을 닫아버리고 아침 10시나 되야 문을 열었다. 물론 일요일은 문을 열지 않았다.

로마는 가게가 일찍 문을 닫는다.

더 늦은 시간에 나와 저녁을 해결하기 위해서 식당을 찾는것 보다는 얼른 무언가를 먹어야겠다고 생각해서 동네를 한 바퀴 돌아봤다. 역시 피자가게는 엄청나게 많은데 우리가 찾는, 우리의 배를 채우기 위한 식당은 딱히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호객행위를 하던 인심좋게 생긴 아주머니가 운영하는 가게에 들어가 가지 구이와 돼지고기구이를 시켜서 먹었는데, 그 맛이 제법 좋았다.  

로마에서 제일 먼저 한 일은 바티칸의 성베드로 광장을 찾아가는 일이었다. 제일 가보고 싶었던 곳이고 가게되면 무언가 좋은 일이 있을것 같았고, 무엇보다 어려서부터 익히 들어왔던 가톨릭 교회의 가장 중심이지 않은가?

로마의 첫 일정에 날씨가 도와주었다.

더군다나 우리를 반겨주듯이 날씨는 너무나 좋았다. 하늘에는 구름이 한 점 없었고 피렌체보다 조금 더 남쪽이라 그런지 기온도 조금 따뜻하게 느껴졌다.  

바티칸 광장에 들어서자마자 내가 본 것은 얼마전 뉴스에서 만났던 난민을 위한 작품 “누구인지 알지 못하고 대접한 천사(Angels Unaware)” 였다. 작품의 우울함과 무거움이 로마 전역에 있는 노숙자와 이민자들을 대변하는 느낌이었다. 이탈리아에는 유독 난민과 노숙자가 많았다. 우리가 들렀던 피렌체, 로마, 바티칸은 물론이고 시칠리아까지 이민자들은 참 많이 보였고, 대도시일 수록 노숙자도 많이 보였다. 시내버스에서 풍겨오는 지린내는 어김없이 한 노숙자가 추위를 피해서 버스에 탑승을 한 것이고 그 것에 대해서 냄새가 나서 조금 찡그리는 표정을 하고는 있었지만, 그 누구도 항의를 하거나 불평을 늘어놓지는 않았다. 한 번은 2칸짜리 버스의 뒷칸이 텅텅 비어있길래 냉큼 올라탔는데, 노숙자의 냄새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다들 그 냄새를 피해서 앞 칸으로 이동해 있었다. 나 역시 냄새를 견디다 못해서 앞쪽으로 이동해 있었는데, 제일 뒤에서 고개를 숙이고 모자를 눌러쓴 한 노숙자의 모습이 보였다. 

내가 입고 있던 잠바를 벗어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최소한 입고있는 옷이라고 갈아입으면 냄새는 조금 덜 날테고 사람들이 피하는 것도 덜 하지않을까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일요일 낮, 교황님 알현을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

바티칸 광장에서 제일 먼저 한 일은 돌아오는 일요일에 있을 성 베드로 대성당의 미사에 참여할 수 있는 티켓을 얻는 일이었다. 인터넷의 뒤져서 방법을 알아두었는데, 성 베드로 대성당에 입장을 해야지만 티켓을 나눠준다는 경비병을 만날 수 있다 했다. 그런데 성 베드로 성당에 입장을 하기 위해서는 약 2시간 가량 줄을 서서 기다려야하는데, 그 일이 쉬운일이 아니었다. 티켓을 반드시 받을 수 있으리라는 보장도 없고, 혹여 티켓을 받는다 해도 미사에 참석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었기 때문에 과감히 포기를 하고 발을 돌렸다.

하지만 일요일 10시에 있는 성 베드로 대성당의 미사는 참여하지 못했지만, 12시에 있는 교황님의 일반인 알현에는 참석을 할 수 있었다. 11시쯤 집을 나서서 베드로 광장에 앉아서 교황님을 기다렸고 어김없이 교황님의 메시지를 직접 들을 수 있는 영광이 나에게 주어졌다.

멀긴했지만 교황님을 직접 만났다

제대로된 공부를 위해서 투어를 신청했다

바티칸 박물관 투어를 신청해서 들어가게되었다. 제일 보고싶은 작품은 누가 뭐래도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였다. 그 전에 미켈란젤로에 대해서 조금 더 이야기를 해봐야겠다. 

지난 여행지였던 피렌체에서도 미켈란젤로의 이야기를 했던것 같은데, 마찬가지로 이 곳 로마에서도 미켈란젤로는 가끔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었다.  

라오콘과 그의 아들이라는 작품이다. 작자미상인 이 작품이 발견되면서 이 곳 박물관으로 옮겨왔고 그게 바티칸 박물관의 시작이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이 석상이 발견되었을 때에 라오콘의 오른팔이 부러져서 없는 상태였다고 한다. 발견 후 사람들이 여러가지 팔의 모양을 추측하다가 길게 뻗은 팔로 복원을 했었는데, 미켈란젤로가 팔은 뒤틀린 모양이라며 그렇게 복원을 했고 그 후에 우연히 원본의 팔이 발견되었는데, 미켈란젤로가 추측했던 그 대로의 팔 모양이라고 한다.  그만큼 미켈란젤로는 해부학을 비롯해서 인체에 상당한 관심이 있었다고 한다. 그렇기에 다비드 상을 비롯한 많은 작품들이 돌 덩어리가 아닌 실제 인체와 같이 살아있는 느낌을 주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박물관 투어 중 낯설지 않은 그림이 있길래 기억을 더듬어 봤더니 한국에서 바티칸 박물관전시회를 했을때 포스터에 있던 천사의 그림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사진을 찍어두었는데, 이 작품이 양 쪽으로 늘어선 시리즈 일 줄이야…

바티칸 박물관 투어를 마치고 바로 성 베드로 대성당으로 입장을 할 수 있었다. 그 곳에서 투어가 종료되었기에 배가고프고 힘이 들었지만 언제 성 베드로 대성당에 들어올 수 있겠냐는 생각으로 조금은 더 차분하고 천천히 성당을 둘러보았다. 

제일 보고 싶었던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모작이 아닌 진짜 그 작품을 내 눈으로 볼 줄이야.

성모마리아의 얼굴을 왜 이렇게 젊게 만들었냐는 물음에 동정녀이자 신의 어머니이기에 그렇게 하는게 맞다고 이야기 했다는 미켈란젤로. 인간의 눈으로 보는게 아니라 하늘의 눈으로 보는 작품이라고 이야기 했다는 그 작품이다. 

감동을 한참 받은 후에 성당 내부로 눈을 돌렸다.  

천정의 높이며, 그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커서 멋진게 아니라 마치 신에게 있어 인간이라는 존재는 참으로 작은 존재라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는 성당이었다. 그리고 성당 곳곳에 자리하고 있는 역대 교황들의 무덤. 그것 만으로도 이 곳이 성스러운 곳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가장 존경받는 교황님 중 한 분인 성 요한바오로 2세 교황님의 무덤도 바로 이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제 1대 교황은 예수님의 제일 첫 번째 제자인 성 베드로 성인이다

역대 교황님들의 이름이 쓰여있는 대리석. 1대 교황이 성 베드로로 되어있고 제일 마지막은 요한바오로  2세라고 기록되어있다. 아마도 역대 교황님이 돌아가셔야 이름을 기록하는 것 같다. 건강으로 인해 교황을 그만 두셨던 직전 교황님인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의 이름이 아직 기록이 안되어 있었다. 사실 교황은 종신직이다. 한 번 선출이 되면 죽을 때까지 그 직을 맡고 있어야 하는데, 직전 교황님은 건강으로 인해서 스스로 물러나게 되었다.

시스티나 대성당의 천정화는 “천지창조”가 아니다

성베드로 성당에 입장하기 전에 소위 “천지창조”라고 잘못 불리고 있는 시스티나 성당의 천정화를 볼 수 있었는데, 이 작품의 원래 명칭은 “시스티나 대성당의 천정화”라고 부르는게 맞다고 한다.

천지창조라고 부르는 것은 일본의 한 방송사에서 이 작품의 보수를 위한 후원을 하면서 그렇게 명칭이 되었다고 하는데, 그러면서 그 일본 방송사에서는 20년간 판권을 소유할 수 있었고 그 동안은 사진촬영이 금지되어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판권의 소유가 종료가 되었는데도 여전히 지금까지도 사진촬영은 금지 되어 있다.  그 판권이 종료된 후에 우리나라 굴지의 대기업 회장님께서 건강하던 시절 엄청난 후원금을 내고 시스티나 성당에 들어와서 성당 바닥에 누워서 이 천정화를 감상하고 돌아갔다는 후일담이 전해지고 있었다.

숙소에서 가까운 곳에 “성 천사성”이라는 둥글게 생긴 건물이 있길래 방문해 보았다.

날씨가 갑작스레 좋아져서 하늘 빛이 너무 좋았고 높은 건물에 올라가면 로마시내가 잘 보일것 같았다. 

본래 성 천사성이라는 건물은 고대로마의 황제 가족 무덤으로 만들어졌다가 방어요새로 사용되고 지금은 중세 기사들의 박물관으로 운영이 되고 있다.

 제일 꼭대기에는 대천사가 칼을 뽑아드는 청동상이있다. 이 천사상은 흑사병을 퇴치한 기념으로 세워졌다고 하는데, 이 곳에서 보는 로마의 전망이 제법 괜찮았다. 

판테온이라고 불리는 건물이 있는데 이는 인류의 건축역사에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건물이다. 판테온이라는 말이 만신전이라는 말이다. 돔으로 만들어져 있는 건물인데, 로마시대 신들을 모시는 곳이었다. 지금은 작은 성당으로 사용이 되고 있다고 한다. 그 안에는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가였던 라파엘로의 무덤이 있는데, 라파엘로의 유언인 판테온이 보이는 곳에 묻어달라고 했던 이야기를 그 당시 라파엘로를 아끼던 교황이 들어준 것이라 한다. 

판테온에 있는 라파엘로의 무덤

판테온에 얽힌 다른 재미난 이야기가 있는데, 이 판테온에 현재 무덤자리가 딱 1개 남이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 자리에 누가 묻히면 좋겠냐는 설문조사를 로마시민들을 상대로 했었는데, 1등을 한 사람이 2002년도 월드컵에서 우리나라와 인연이 깊은 이탈리아 축구선수 “토티”가 차지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토티가 AS로마 유소년팀에 입단해서 은퇴할때까지 AS로마 소속으로만 머물러 있었고, 은퇴 후에도 AS로마와 계속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로마시민들은 판테온 무덤의 하나 남은 자리가 바로 “토티”의 자리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이탈리아 사람들의 축구사랑은 상상 이상이다.

로마하면 빠질 수 없는게 콜로세움이다.

“콜로세움”이라는 말은 커다란 동상이라는 뜻인데 처음엔 이 콜로세움 앞에 콜로세움 높이정도되는 네로황제의 황금동상이 서 있었다고 한다. 사람들이 큰 동상 앞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잡기 시작하면서 이 곳의 이름이 콜로세움으로 변형이 되었다고 한다. 

콜로세움은 대단히 웅장했다.

콜로세움 왼편에 보면 정사각형 모양의 공터가 있는데 바로 그 자리에 네로의 동상이 서 있었다는 문구가 새겨진 돌이 있어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콜로세움은 지금도 발굴 중이며 복원은 현재 그대로 유지하는 것으로 결론이 지어졌다고 한다. 없어지고 무너져버린 그 부분도 인류의 역사라는 생각에 그렇게 하기로 했다고 한다.

처음엔 검투사들의 결투가 있었지만, 나중에는 인간과 동물, 동물과 동물들끼리의 대결도 큰 관심을 끌었고 그 후에 이곳에서 기독교 신자들의 순교가 있었고 그 후에 그 사실을 알게되고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고 한다. 지금 우리가 찾고 있는 경기장의 원형이 바로 이 곳에서 시작이 되었다고하니 참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마차 경기장이 있던 흔적과 포로로마노, 팔라티노 언덕의 모습

로마는 카톨릭의 성지답게 성당이 참 많다. 로마 뿐만이 아니라 유럽 전역이 그런것 같다. 이 이후의 유럽 여행지 모두 담배가게보다 성당이 더 많은 느낌이었다. 유명한 성당 뿐만이 아니라 유명하지 않은 동네에 있는 작은 성당도 참 이쁜곳이 많았다.

로마에는 작지만 예쁜 성당이 참 많다.

지나다가 우연히 들러본 성당이었는데, 천정의 돔을 통해서 들어오는 푸른 빛이 마치 거대한 우주를 연상하는 것 같아 숙연한 기분이 들었다.  

또, 베드로의 쇠사슬 성당이라는 곳도 있는데 이 곳에는 미켈란젤로의 또 다른 작품도 함께 전시되어 있는 곳이다.

성 베드로를 처형하기 전에 묶었던 쇠사슬인데 두 개로 나뉘어 있다가 두 개를 맞대었더니 붙어서 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성당의 한 편에는 미켈란젤로의 뿔난 모세라는 작품이 전시되어있다. 미켈란젤로가 성경을 잘못 해석해서 뿔이난 모세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성경에는 ‘모세의 머리에서 빛이 났다.’라고 되어있는 부분을 ‘뿔이 났다.’로 해석해서 그리 되었다 한다. 그리고 미켈란젤로가 이 모세상을 완성한 후에 자산의 작품이 완벽하다고 인식한 후에 모세의 무릎을 치면서 “왜 말이없는 거냐?”라며 소리를 쳤다는  일화가 있다고 한다.

로마에는 낡은 소형승용차가 제법 보인다

로마에서 오래된 소형 승용차들을 간혹 볼 수가 있었는데, 그 모양이 참 귀여워서 사진을 찍어 두었다. 유럽에는 중형 승용차보다는 소형차들이 훨씬더 많은데 유독 로마에는 오래된 소형차들이 더 많이 보였다. 그리고 대부분의 자동차는 모두 수동미션이 장착되어있는데 자가용이 재산이아니라 자신들의 생활에 반드시 필요한 물건정도로 인식하고 이동하는 수단일 뿐이라는 생각이 큰것 같아 보였다. 

주차되어있는 차를 뺄때에 앞뒤의 자동차 범퍼를 부딪히면서 차를 빼내는건 수시로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서 그 누구도 불평을 하거나 항의를 하지는 않더라.

로마의 지하철과 기차는 우리나라의 그것들 보다는 조금 지저분한 느낌이다. 사실 지하철역의 여기저기에서 지린내도 많이나고 조명도 밝지 않다. 또 지하철 외관의 그래피티는 왜 그리 많은지 지하철의 본연의 디자인이 전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그래피티 낙서가 많았다.

우리나라의 경상북도 경주처럼 로마는 말 그대로 도시 전체가 유적지였다. 그래서 불편하더라도 지하철을 더 만들 수 없는것 같다.

로마에 머무는 동안 날씨는 비오는 시간 반, 흐린날 반, 그리고 맑은 하늘 잠깐. 아무리 예측하기 어렵다해도 일기예보는 절대로 맞을 생각을 하지 않았고, 외출을 할때면 항상 우산과 우비를 챙겨 다녀야했다. 하지만 비가 온 덕분에 제법 멋진 사진도 몇장 건질 수 있었는데, 군데 군데 웅덩이에 반영된 건물들의 사진을 촬영할 수 있었다. 

로마에는 콜로세움과 바티칸 성 바오로 대성당 이외에도 많은 유적과 건문들 그리고 구경거리들이 많이있었다. 영화 로마의 휴일때문에 유명해진 스페인광장의 계단과 진실의 입 등도 모두 둘러볼 수 있었다. 영화로 유명해서 그렇지 역사적으로는 큰 의미가 없는 곳이었다.  

진실의 입의 바로 옆에는 작은 성당이 바로 붙어있는데, 이 성당은 발렌타인데이인 2월 14일을 축일로 하고 있는 발렌타인 성인을 기념하는 성당이 세워져있고 그 성당에는 발렌타인 성인의 유해가 모셔져 있었다. 그 곳을 둘러 나오면서 바닥에 무수히 깔려있는 비석과 석관의 뚜껑에서 옆에 있던 한국인들에게 잠시 가톨릭과 성당의 무덤에 대해서 설명을 해 주었더니 처음 알게된 이야기라며 신기해하며 고마워했다.

로마에는 다른 명물인 트레비 분수가 있다. 트레비라는 말은 3이라는 뜻이 있는데 이 곳이 삼거리라서 그렇게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우리말로 바꾸자면 “삼거리 분수”, 혹은 “분수 삼거리” 정도 되지 않을까 싶다.

이 분수에 동전을 던지면 반드시 로마에 돌아온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 이야기 역시 영화 로마의 휴일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오른손에 동전을 두고 왼쪽 어깨 너머로 동전을 던지는데 동전을 한 번 던지면 로마로 돌아오고, 두 번을 던지면 연인과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숨어있는 이야기가 한 가지 더 있는데, 이 분수를 제작할 당시에 바로 옆에 있던 가게 주인이 시끄럽고 먼지가 많이 난다고 매일같이 항의를 하고 공사를 방해했다고 한다. 그래서 건설을 맡아서 진행하던 니콜라 살비가 그 가게 주인에게 “당신은 평생 이 분수를 보지 못할 것이오!”라고 이야기를 했고, 실제로 그 가게앞에 아래 사진과 같은 항아리 모양의 장식을 설치해 두었다고한다. 

결국 가게에서는 절대로 이 분수가 보이지 않는 모양으로 설계가 되었고 그렇게 건설이 완료되었다. 지금도 그 가게는 주인이 바뀌어서 영업중인데 전망이 좋지 않아 조금 답답해 보였다.

작은 박물관과 전시관도 많다.

로마에는 크고 작은 박물관이 많이 있는데 우연히 들러보게된 박물관에서 재미난 나무 조각을 볼 수 있었다. 천사가 악마를 무찌르고 있는 조각인데, 간단히 보면 천사가 불의 칼로 악마를 처단한 모양으로 보이지만 자세히 돌아보면 악마의 잘려진 허리아래로 또 다른 모습의 악마가 나타나고 있다. 이 모습은 아마도 옛날 사람들이 악마는 인간의 형상으로 우리주위에 나타나 우리를 끊임없이 유혹한다는 성경의 한 구절 때문에 이렇게 해석을해서 조각을 만든건 아닐까 싶었다. 

로마에서 만난 최고의 인연은 정육점 아저씨

로마의 숙소에 머무는 동안 동네에 큰 슈퍼와 정육점을 자주 들렀는데, 정육점 아저씨의 인상이 너무나 좋아서 아저씨와 잠시지만 장난도 치고 농담도하는 사이가 되었다.

정육점 아저씨의 놀라운 칼 솜씨

아저씨에게 “필레또(안심) 있어요?” 물어보면 절대 대답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꼰뜨로 필레또(등심)는 있어요?” 물어보면 환하게 웃으면서 당연히 최고의 선택이라며 고기를 썰어주신다. 나중에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는데, 안심은 취급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니 안심을 달라고하면 대꾸도 안하는 이유였다. 아저씨가 생김과 같이 참 귀엽게 느껴졌다. 

그리고 이 정육점에는 항상 세 명이 근무를 하고 있는데 아저씨와 와이프로 추정되는 인물과 딸로 추정되는 인물이렇게 항상 세 명이 같이 출근하고 같이 퇴근을 하고 같이 근무를 하고 있었다. 동네에 있는 아주 작은 정육점인데 왜 그러는지 당최 알 수가 없었다. 

아저씨에게 고기를 달라고하면 아저씨가 고기를 꺼내서 손질해서 썰어주고 고기 중량이 찍혀있는 종이를 주신다. 그러면 그 종이를 카운터에 내고 결제를 한다. 중요한건 그 정육점이 정말 작은 곳이라는거다. 한국의 동네 시장에서 만날 수 있는 아주 작은 정육점이다. 아직도 세 명이 분업을 하고 있고, 왜 같이 일을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로마를 떠나는 날, 저녁 장사를 위해서 출근을 하는 아저씨를 만날 수 있었다. 아저씨에게 구글번역기를 통해서 “로마에 머무는 동안 아저씨 덕분에 맛있는 고기를 먹을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항상 행복하세요.”라고 이야기를 해 주었고, 아저씨는 아주 큰 웃음으로 나를 끌어안고 악수를 청해주었다. 그리고 와이프로 추정되는 여자도 함께 악수를 해 주었고 여행하는 동안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라며 화답을 해 주었다. 

그렇게 13일간의 로마일정을 마치고 로마에서 야간에 출발하는 침대칸 열차를 타고 시칠리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