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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세계여행 – 이탈리아 피렌체

2019년 11월 1일 ~ 11월 6일

잘츠부르크에서 피렌체까지는 야간열차를 이용해서 숙박비를 절감해보기로 했다.

당연히 침대열차를 생각했었는데 오스트리아 열차예매 사이트에서 수 차례 시도해 봐도 인터넷으로는 일반좌석밖에는 예약이이 되지를 않았다. 

급한대로 일반 좌석을 예약 해두고 잘츠부르크에 있는 오스트리아 열차의 기차역에 가서 문의를 했다.

독일에서 이탈리아까지의 야간열차는 인기가 좋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유레일패스 2등석으로 당연히 침대칸 예약이 가능하다면서 확인을 해보더니 침대칸은 모두 예약이 끝나버려서 일반 좌석만 남아있다고 했다.

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피렌체에 도착해서 첫 날은 무조건 쉰다는 생각으로 좌석에서 버텨보기로 하고 열차에 탑승을 했다.

열차 출발시간이 밤 10시이고 도착시간은 다음 날 아침 6시. 자그마치 열차에서 8시간을 버텨야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잘츠부르크 기차역 바로 앞에 도미토리형 숙소가 아주 저렴한 가격에 나와있어서 처음의 숙소를 오전 10시에 체크아웃하고 기차출발시간까지 점심을 해결하며 잠시나마 열차의 출발시간 전까지 도미토리형 숙소에서 편안하게 쉴 수 있었다.  

야간에 먹을 간식거리인 샌드위치와 과자 두어봉지, 물을 충분히 샀고 짐을 챙겨서 열차에 탔는데, 열차의 캐빈이 아주 난장판이었다.

우리가 타야하는 6인석의 마주보는 캐빈에는 이미 4명의 성인과 1명의 갓난아이가 타고 있었고, 캐빈과 복도의 바닥에는 탄산음료를 엎질렀는지 끈적거리는 바닥이 아주 신경을 거슬르고 있었다. 갓난아기는 엄마에게 칭얼거리고 있었다. 마주보는 좌석의 창쪽에는 남미계열로 보이는 젊은 커플이 있었고 남자 옆에는 백인 아저씨 한 명, 그 맞은편에는 한 번에 보기에도 행색에 초라한 흑인 아기엄마와 갓난아기 그리고 우리가 앉아야하는 자리에는 그 아주머니와 아기의 짐이 한 가득 놓여있고, 의자 아래에는 엎질러진 탄산음료의 흔적과 시커먼 발자국들 그리고 젖어서 뜯어진 감자튀김이 뒤엉켜 시장 뒷골목 같은 느낌이었다.

우리가 타야하는 열차의 캐빈은 아주 엉망이었다.

더군다나 내가 메고있는 커다란 배낭과 우리 옷가지가 들어있는 트렁크를 올려놓을 자리조차 없었다.

열차는 출발을 해서 흔들거리고, 짐을 어디엔가는 해결을 해야 조금은 편안하게 앉아서 갈 것 같고 짜증인 몰려오고 와이프와 나는 난감해하고 캐빈에 있는 사람들과 서로 눈빛으로 당혹해 하고 있었다. 

일단 트렁크는 자리를 만들어서 선반에 올려두고, 아기엄마의 큰 트렁크 위에 작은 트렁크를 포개두니 커다란 배낭도 올려둘 수 있었다. 겨우 자리를 만들었고 우리는 앉기 전에 물티슈를 꺼내서 쪼그리고 앉아서 바닥을 닦기 시작했다. 코인형 물티슈를 손 바닥위에 올려두고 물을 부으며 부풀어나는 물티슈를 남미 커플에게 “이건 당신들이 처음보는 마술일꺼야!!”라고 얘기하며 보여주었더니 엄청 신기해 했다. 

아내와 나는 끈적이는 바닥을 어떻게든 닦았고, 조금은 편안한 공간이 되었다. 그리고 커플 중에 남자가 우리에게 손 소독제를 주었고, 우리는 감사하다며 사용했다. 그 커플은 멕시코에서 왔고 여행중이라고 했다. 우리는 세계여행 중이고 마지막 코스로 멕시코 칸쿤에 들러볼 예정이라 했더니 12월의 칸쿤은 최고의 여행지라며 잘 다녀오라고 격려를 해 주었다. 

기차의 끈적이는 바닥을 닦으며 사람들과 가까와졌다.

우리가 바닥을 닦고 조금은 편안해 지니 캐빈의 조금은 서먹하고 견제하던 분위기가 누그러지고 편안해졌다. 멕시코 커플은 독일 뮌헨에서 출발해서 피렌체를 지나 로마까지, 이탈리아 아저씨는 피렌체까지간다고 했다. 흑인 아주머니는 도저히 말이 통하지 않아서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고 아주머니는 우리들의 눈치를 조금은 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열차는 한 참을 달려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의 국경근처의 Villach Hbf. 역에 도착을 했다. 이 곳에서 지금까지 달려왔던 기관차를 바꿔서 열차의 진행방향이 바뀌게 된다. 열차는 조금 쿵쿵하며 흔들렸다. 잠시 조용해지나 싶더니 복도에서 누군가가 우리 캐빈에 플래쉬를 비추고 문을 벌컥 열고 실내등을 켰다. 깜짝 놀랐는데, 이탈리아 경찰과 오스트리아 경찰이 조를 이뤄서 각 캐빈을 검사하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에게 여권을 보여달라했는데, 복도쪽에 있던 내가 제일 먼저 보여줬고 대충보고 돌려주고, 내 자리 옆의 이탈리아 아저씨는 이탈리아 주민증같은걸 보여줬더니 보는둥 마는둥 돌려줬다. 멕시코 커플의 여권은 유심히 보긴 했지만 그리 심하지는 않았고, 그 다음 내 아내의 여권은 꺼냈더니 겉표지만 보고 돌려줬다. 

그리고 문제의 흑인 아기엄마. 제일 마지막에 무언가를 꺼내서 보여줬는데 여권이 아니었다. 3단으로 접혀있는 얇은 종이였는데, 사진도 붙어있지 않았다. 슬쩍 봤더니 어떤 허가증같아 보였는데, 아마도 난민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오스트리아 경찰은 조금 강압적인 눈빛으로 “패스포트”를 얘기했는데 아주머니는 계속 무어라 말을 했고 영어발음은 아닌것 같았고 독일어도 아닌것 같았다. 도착하면 해결된다는 느낌이었는데 그 때부터 아주머니가 조금은 측은한 생각이 들었고 그 분위기가 무섭기도 했다.

우리 캐빈에 경찰이 들이닥쳤다.

결국 아주머니는 젖먹이 아기와 함께 강제로 하차를 하게 되었다. 아주머니를 도와서 트렁크 두 개를 꺼내주었고, 경찰은 아주머니를 앞 뒤로서서 열차에서 내렸다. 아기와 아주머니가 걱정이 되기도 했고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서 창 밖을 내다보았는데, 한참동안 경찰와 함께 플랫폼에 서있던 아주머니와 아기는 총을 들고 제복을 입은 경찰과 함께 플랫폼을 떠났다.

그리고 바로 이어 열차는 출발을 했다.

그 후에 캐빈에 있는 사람들은 서로 마음이 편하지 않다고 이야기를 나누었고, 열차는 정시에 피렌체에 도착했다.

그러면서 난민을 뜻하는 영어인 “refugee”라는 단어도 알게 되었다. 죽음이라는 말 보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단어가 아닐까하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

피렌체에 도착한 시간은 아침 6시를 조금 지난 시간. 

우리 숙소까지는 도보이동으로 약 15분. 

숙소의 체크인 규정 시간은 오후 3시.

이제 길고도 긴 9시간을 어디서 어떻게 보내야할지 막막해하다가 일단은 숙소에 찾아가서 이른 체크인이 가능한지 물어보기로 했다. 이른 체크인이 안된다면 짐이라고 맡긴 후에 가벼워진 몸으로 편안한 곳을 찾아서 쉬기로 했다. 혹시 조금의 비용이 발생하더라도 체크인을 일찍하고 숙소에서 쉴 수 있다면 그렇게 하기로 했다. 

숙소에 도착하니 아침 7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문을 두드리고 리셉션에 갔더니 영어를 전혀 하지 못하는 경비아저씨만 있었다. 생전 처음들어보는 이탈리아어로 무어라 하는데 알아들을 수도 없었고 말을 빨리해서 그런지 구글번역기도 사용할 수 없었다. 다만 손짓과 표정으로 하는 이야기는 7시가 되면 누군가가 오니까 의자에 앉아서 조금만 기다리라는 이야기라고 생각되었다. 

잠시 후 7시가 되니 조금은 어려보이는 직원이 출근을 했고 경비아저씨는 그 직원에게 쪼르르 달려가 무어라 야이기를 전하고 칼퇴근을 했다. 잠시 후 그 직원은 짧은 영어로 8시가 되면 리셉션이 오픈을 하니까 그때까지는 안쪽에있는 편안한 쇼파에서 쉬고 있어도 된다고 얘기해주며 자판기도 있으니 커피도 마시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우리는 정말로 편안한 쇼파에 앉아서 잠시 졸고 있었고 조금시간이 지난 후 직원이 리셉션이 오픈을 했다고 알려주었다. 나는 한 걸음에 리셉션에 달려가 최대한 불쌍한 표정으로 우리는 밤새 열차를 타고왔고, 침대칸이 없어서 거의 앉다시피해서 왔고, 지금 엄청피곤한데 혹시 조금 빠른시간이지만 체크인이 가능한지를 물었다. 리셉션의 아주 아주 잘생긴 이탈리아 직원은 빈 방이 있는지 살펴보겠다고 하더니 다행이 방이 몇개 남았다면서 아침 8시에 체크인을 해 주었다. 그 호텔의 직원 얼굴에서 빛이 나는 순간이었다.

너무나 친절한 레지던스 호텔에 묵을 수 있었다.

우리는 안도의 한 숨을 내 쉬고 한 걸음에 우리가 피렌체에서 묵게될 방으로 들어갔고,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짐도 채 풀지않고 바로 침대로 들어가 잠을 잤다.

나중에 그 숙소에서 메일이 왔는데 잘 쉬었다 갔는지, 편안했는지 물어보는 설문이 왔길래 읽어보지도 않고 10점 만점을 주었고 다른 여행자들에게도 반드시 추천을 하겠다고 회신해 주었다.

숙소가 조금 춥기는 했지만 우리가 머무는 동안 큰 어려움은 없었다. 이 숙소에서도 고기를 사다가 구워먹기도 했고, 바로 앞의 빨래방에서 세탁도 마음껏 할 수 있었다. 다만 침대가 두 명이 눕기에 낡고 작긴했지만 둘이 꼭 끌어안고 잠을 잘 잘 수 있었다.

피렌체는 르네상스가 시작된 곳이다.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단테 등의 각 예술분야의 천재들이 활동한 도시이자 그들을 후원하며 키워주었던 메디치 가문이있던 도시이다.

투어를 하며 알게되었지만 만약 메디치 가문이 없었다면 르네상스도 존재하지 않았을테고 지금 현재의 우리의 미술을 비롯한 각종 예술의 모습도 지금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으로 전개, 발전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메디치 가문은 시기를 잘 타고난 것도 있지만, 금융업으로 시작을 해서 성공하게된 가문이고 그 당시의 천문학적인 돈을 긁어모아 그 돈으로 미술, 건축을 비롯한 각종 예술가들을 후원하는 일을 했다.

그 덕에 우리는 지금 엄청난 미술작품과 건축물들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메디치가문의 제일 마지막 사람은 가문이 보유하고 있던 엄청나게 많은 미술작품들을 단 한가지 조건인 외부로 유출하지 않는 조건으로 피렌체에 기증을 했다고 한다. 

메디치 가문을 빼고 르네상스를 이야기할 수 없다.

그 덕에 우피치 미술관에서 그 작품들을 구경할 수 있는 것이다.  우피치 미술관은 메디치 가문이 재산을 관리하고 서류를 쌓아두고 행정업무를 하기 위해서 지어진 건물인데 “우피치(Uffizi)”라는 단어에서 “오피스(Office)” 즉 사무실이라는 단어가 파생되었다 했다. 

그 예만 보더라도 메디치의 영향력은 엄청났던 것이다. 

우피치 미술관의 중간 회랑에는 양쪽 기둥에 그 당시 자신들이 후원했던 예술가들의 조각상이 늘어서 있는데 그 곳에서 미켈란젤로와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볼 수 있었다.  

이들의 뒷 이야기도 엄청나게 많이 알려지고 있는데, 나의 흥미를 가장 끌었던 이야기는 지금은 바티칸 성 베드로 성당에 있는 피에타에 관련된 이야기다.

성모마리아가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를 안고 있는 모습의 대리석으로 조각한 석상인데 24살의 미켈란젤로가 만든 작품이라고 한다. 그가 젊었던 시절에 만들어서 세워두었는데 사람들이 그 당시 크게 유명하지도 않고 젊었던 미켈란젤로가 이렇게 멋진 작품을 만들었을리가 없다며 미켈란젤로가 누군지도 모르고 그가 만들었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다고 한다.

그게 기분이 나빠진 미켈란젤로가 밤에 몰래가서 자신의 이름을 피에타의 성모마리아가 두르고 있는 띠에 새겨두었는데, 자신의 이름을 조각에 새겨두고나서

“이 세상을 창조한 신도 그 어느것에 자신의 이름을 새기지 않았는데, 한낱 인간인 내가 무어라고 이름을 새긴단 말인가!!” 라며 후회를 하며 그 이후에 자신의 어떠한 작품에도 이름을 남기지 않았다고 한다. 

80이 다 되어서 자신의 무덤에 사용할 또 다른 모습의 피에타도 조각을 했는데 현재 미완의 상태이고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를 안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그 조각에 그대로 넣어 두었다.

우피치 미술관의 또 다른 유명한 작품인 보티첼리가 그린 비너스의 탄생이라는 작품이다.

우피치 미술관에서 깜짝 놀란 부분은 이 명화를 대리석을 이용해서 부조로 그림 아래쪽에 만들어 두고 시각장애인들을 위해서 만져서 그림을 볼 수 있게 해 두었다는 점이다. 나는 멋진 그림과 건축물들을 보면서 감탄을 했지만 시각장애인들은 그 그림을 볼 수없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모든 그림들을 이렇게 만들어 둘 수는 없겠지만 유명한 그림들 그리고 묘사가 아주 잘 되어있는 그림과 조각들은 그 옆에 시각장애인들을 위해서 이렇게 만들어 두었다. 

우피치 미술관에는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장치가 되어있다.

나도 만지다가 옆에 경비원에게 한 소리 들었지만 말이다. 반드시 시각장애인들만 만지라고 적혀있었다.

머무는 동안 우피치 미술관을 무료로 입장할 수 있었다. 일반 요금이 12유로, 우리돈으로 약 15,000원정도 되는데 일정을 살펴보다가 한 달에 한두 번정도 무료입장이 가능한 날이 있었는데, 바로 그 날이었다. 

아침일찍 서둘러 나가서 키오스크에서 입장권을 발급받았는데, 발급받는 시간이 아침10시쯤. 우리가 입장할 수 있는 시간은 오후 2시 45분이었다.

우리가 우피치 미술관에 도착한 시간이 9시 30분쯤 되었는데 그 이전에 우리 앞으로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시뇨리아 광장을 가득 채워서 줄을 서 있었다.  

일요일이라 그랬던 것인지 아주 특별한 날인지는 모르겠지만 우피치 미술관도 무료로 개방을 하고 지금은 피렌체의 시청으로 사용하고 있는 베키오 궁 앞에는 옛날 모습을 한 병사들이 궁을 지키고 있는 퍼포먼스도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줄을 서서 조금씩 앞으로 가는게 지루할 즈음 어디선가 북소리와 함께 발자국소리가 들렸고 베키오 궁을 지키고 있는 병사들의 교대식을 재현하고 있었다.

교대식 하러가는 병사들의 행진

베키오 궁 앞에는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상이 자리를 하고 있는데, 실제로 앞에 있는 것은 모작이고 진품은 피렌체 아카데미아 미술관에 전시해 두고 있다했다. 다비드 상은 다윗과 골리앗으로 성경에 나오는 다윗의 이름인데 오른손에는 작은 돌을, 왼손에는 돌팔매를 던질 가죽끈을 쥐고 있는 모습이다.  

진품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베키오 궁 앞에 서 있는 다비드 조각만으로도 대단한 작품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인체의 근육과 혈관, 아주 미세한 근육의 움직임까지 표현한 아름다움이 여기에 있었다. 마치 꿈틀대며 살아 움직일 것 같았다.

미켈란젤로는 시대를 넘어선 최고의 천재임이 틀림없다.

미켈란젤로의 3대 조각작품이라고 알려져있는 피렌체의 다비드 상, 바티칸 성 베드로 성당의 피에타, 마지막으로 로마의 성 베드로의 쇠사슬 성당에 있는 뿔 난 모세상을 모두 볼 수 있었다. 그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하기로 한다.

베키오 궁이 있는 시뇨리아 광장에는 이곳과는 어울리지 않는 조형물이 하나 서 있는데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이 나무를 보고 영감을 얻어 인체의 황금비율이라는 스케치를 그렸다고 설명이 되어있었다. 어떻게 이런 나무를 보고 비율에 대한 영감을 얻을 수 있는지 보통의 머리를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상상이 잘 되지 않았다.

그렇게 줄을 서서 무사히 우피치 미술관의 입장권을 받을 수 있었다.

사실 이 종이는 입장권이라기 보다는 입장할 수 있는 시간, 즉 이 시간에 오면 입장권을 준다는 표시가 적혀있는 종이였다. 이 종이를 잘 가지고 있다가 시간에 맞춰서 입구로 가면 입장권을 나눠주고 입장할 수 있게 된다. 

평소 미술에 대해서 뭘 알아야 감상을 할텐데 하는 생각을 가지고 들어가보았는데, 엄청나게 많은 미술품들에 눈이 뒤집어질 정도였고, 이 모든 것들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일주일로도 부족하겠다 싶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우피치미술관에 입장을 공짜로 할 수 있다.

메디치 가문의 위대함도 느낄 수 있었고, 그들이 실천한 노블리스오블리제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가문의 마지막에 모든 미술품을 피렌체시에 기증했다는 것도 놀라웠고, 모든 대중들이 감상할 수 있게 해달라는 기증의 조건 역시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피렌체는 두오모성당으로 불리고 있는 피렌체 대성당 즉 꽃의 성모성당을 빼놓을 수 없다. 엄청난 크기의 돔이 씌워져 있는 성당인데, 그 외벽만 봐도 참 이쁘다는 생각이 든다.  

흰색과 녹색, 붉은색의 대리석이 적절하게 배치되어 아주 멋진 성당의 외관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성당의 커다란 돔은 누가 보더라도 장엄한 광경일 수 밖에 없다.

두오모성당”은 잘 못쓰고 있는 말이다.

이 성당의 앞마당엔 세례당 건물이 하나 더 있다. 즉, 성당, 종탑, 세례당. 이렇게 세 개의 건물이 하나의 성당을 이루고 있다. 아마도 옛날에는 성당에 여유가 있다면 세례를 위한 건물, 혹은 공간을 별도로 마련해 두기도 했었던것 같다.

세례당에도 들어가 보았는데, 건물은 정확하게 8각형으로 되어있다. 또한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냥 휑한 건물이고 그 안에 그림이 그려있는 정도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세례당 내부의 바닥을 보면 사진처럼 명확하게 구분이 되는 곳이있다. 천정의 8각형 지붕과 정확하게 아래로 맞아 떨어지는 면적으로보이는데, 바닥을 자세히 보면 검정, 흰색으로 되어있는 부분과 밝은 갈색으로 되어있는 부분이 무언가 어색하다. 더 자세히보면 밝은 갈색의 바닥은 현대에 건축공법임을 알 수 있다. 학창시절 교실 바닥의 모습과 색만 달랐지 그 모양이 비슷했다.

그리고 저 밝은 갈색의 바닥은 가운데 8각형을 이루고 있으면서 한쪽 부분이 세례당의 중앙 제대를 향해 있다.

미루어 짐작해보건대, 이 부분은 3~4개의 계단을 이용해서 아래로 내려갈 수 있는 곳으로 되어있었고 예전에 세례를 주는 방법은 성경에 묘사가 되어있듯이 옷을벗고 몸이 물로 들어간 후에 머리에서 부터 온 몸으로 적시는 세례를 주었던 것은 아닐까 싶다. 

세례당에서 바닥을 잘 보면 옛적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물론 현대에서는 허리를 숙이고 머리를 숙여 이마에 살짝 성수를 부어주는 방법으로 바뀌긴 했지만 말이다.

아내와 나는 이 것을 찾아낸 후에 서로 박수를 치며 참 좋아했다. 여기 들어오는 수 많은 사람들 중에서 우리가 찾아낸 보물을 발견한 느낌이었다.

예전에 사용하던 세례당의 정문에는 엄청난 황동 조각으로 만들어진 커다란 문이 만들어져 있다.

총 10개의 부분으로 나뉘어있고 모두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를 조각해 둔 것이다. 나무로 음각으로 파낸 후에 쇳물을 부어넣어 이 부분을 만들었고 문에 끼워 넣어 완성한 작품이다. 20년 정도가 걸렸다 하니 대단히 공을 들인건 틀림없다. 이 작품을 미켈란젤로가 지나가면서 보고 “천국의 문”이라고 말한데에서 그 이후로 천국의 문이라 불리고 있다고 한다. 

세례당에는 천국의 문이 장식되어 있다

기베르티라고 하는 사람이 만들었다고 이야기를 들었다. 

처음에 이 문을 만들때에 피렌체 시에서 공고를 내서 예술가들을 모집했다고 한다. 각 지역에서 많은 지원자들이 몰려들었는데, 최종적으로 기베르티와 브루넬레스키가 남았는데 결국 기베르티에게 문을 제작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이게 상심한 브루넬레스키는 로마로 떠나게 되었고, 기베르티는 아들과 함께 이 문을 제작하게 되었다.

기베르티가 인정을 받게되고 세례당의 다른 편에 있는 문의 제작도 의뢰를 받아서 다시 제작을 하게 되었다.

그 당시 예술가들은 교황청이나 교회에 속해있지 않으면 먹고살기 어려웠고, 이런 이벤트 성 제작의뢰가 있으면 제작기간이 오래걸리면 걸릴 수록 급여를 계속해서 받을 수 있으니 좋은 일감이었다고 했다. 아무튼, 기베르티는 다시 의뢰를 받게되었고 이번에는 12조각으로 되어있는 문의 제작을 자신의 아들과 함께 하기 시작했고, 제작을 하던 아들이 이런 작품에 아버지의 흔적조차 남길 수 없다는 사실에 아버지 기베르티를 설득해서 결국 이 문의 조각에 자신들의 얼굴을 새겨 넣었다.  

천국의 문으로 인해서 꽃의 성모성당에 돔이 완성되게 된다.

20여년이 지난 후에 피렌체에 커다란 성당은 완성을 했지만 돔을 덮을 기술이 부족했던 시기였기에 임시로 덮어놓았던 지붕을 근사한 무언가로 완성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피렌체 시에서는 공고를 내게 되었으나 그 누구도 선뜻 나서지 않았는데, 세례당의 문을 만들려고 했다가 최종에서 떨어졌던 브루넬레스키가 자신이 돔을 이용해서 완성을 하겠다고 나섰는데, 사람들이 우습게 알면서 그렇다면 네가 어떻게 할 수 있는지 알려달라 했으나 브루넬레스키는 계란을 가지고 와서 이 계랸을 바닥에서 세워보라했고, 아무도 하지 못하자 브루넬레스키는 계란의 한쪽을 깨트려 계란을 세우는 시범을 보이면서 고정관념을 깨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으면 완성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했고, 결국 브루넬레스키가 돔을 만들게 되었다고 했다.

지금 두오모라고 부르는 말에서 돔이라는 말이 생겼다고 하니 그 역시 참 대단한 일이라는 생각이들었다.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는 단어하나조차 이 곳에서 생겨났다고 하니 예술의 영향력이라는게 엄청나다 싶었다.

완전한 구의 돔이 아니라 8각형 모양의 돔을 만들어야했기에 더 없이 어려운 방법이었고, 결국 이 돔은 세계 최초의 8각형 돔이자 최고의 석재 돔이고 목재 지지대 없이 만들어졌고 현재에도 세계에서 가장 큰 돔으로 인정 받고 있다고 한다.

이 돔을 자세히 보면 한 면에 9개씩의 구멍이 뚫려있는데, 이 구멍에 비둘이들이 드나들면서 아주 골치가 아파져서 저 구멍을 종이로 막아 두었는데 막은지 얼마 되지 않아 지붕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서둘러 막아두었던 종이를 치워버렸다고 한다. 

이 돔을 만든 브루넬레스키의 천재성을 여기서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것 같았다.

저 돔을 보기위해서 옆에 있는 조토의 종탑에 올랐다. 414개의 계단을 걸어오르는데 조금은 숨이 차 올랐다. 제일 꼭대기에 올라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르네상스 시대를 느껴보니 지금을 살고 있는 내가 숙연해지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그토록 간절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예술에 모든 것을 쏟아붓게 만들었을까? 

조토의 종탑에서 동쪽하늘에 떠 있는 무지개를 보았다. 피렌체에서 몇 번의 무지개를 볼 수 있었는데, 이 날의 무지개는 나에게 조금은 더 큰 의미가 있었다. 계단을 오르면서 마음속으로 이 수 많은 예술가들의 진심과 그들의 숨결을 내가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는 계단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마음속으로 빌면서 계단을 올랐는데, 나에게 보여준 그들의 응답이 아니었을까 생각하며 조심스레 가슴속에 담아 두었다.

종소리가 들리는 피렌체 대 성당

조토의 종탑에 오르려고 줄을 서 있는데 마침 갑작스레 하늘이 맑아지고 종소리가 들려왔다. 숙연한 기분이 들면서 성스러운 느낌이 함께 들었다. 

예술가들의 숨결을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랬다.

우연히 길을 걷다가 하늘을 보고 깜짝 놀랐다. 

처연한 초생달과 커다란 돔이 함께 걸려있는 이 장면을 놓칠 수 없었다.

1966년도에 피렌체에 커다란 비가 내려서 홍수가 난적이 있었다. 그 홍수에 거의 모든 것들이 떠내려갔고 앞서 이야기했던 세례당 문의 황동 조각들도 6개가 떠내려 갔었는데 그 다음날 그걸 주워서 보관하고 있던 사람들이 모두 성당으로 가지고 돌아와 없어진것 없이 그대로 찾을 수 있었다 한다. 사람들의 양심을 믿었다며 그 기념으로 아래 사진과 같은 기념비(?)를 붙여 놓았다.

돌 아랫부분에 표시를 해 둔 부분까지 물이 찼던 곳이라고 알려주고 있다. 약 2미터 정도, 1966년 11월 4일.

여행 중에 빨래는 직접 해결해야 한다.

피렌체에 머물면서 숙소 앞에있는 빨래방을 들러서 세탁을 했는데, 세제의 유무에 대해서 아내와 서로 옥신각신 했다. 나는 세제를 우리가 직접 가지고와서 넣어야 한다고 했고, 아내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빨래방에 세제를 가지고 오는건 아닌데 따로 판매를 하는 것도 아니니 당최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다고 의견이 나뉘었다.

결국 방콕에서 구입해서 가지고 있던 가루세제를 조금 덜어와서 세탁을 했다.

세탁을 하던 중에 세탁기 아래에 적혀있는 문구를 번역기를 돌려 확인했더니 세제와 섬유유연제는 자동으로 투입이 된다는 말이었다. 결국 아내의 의견이 맞다는 쪽으로 기울었고 그 날의 저녁은 내가 차리게 되었다. 

캠핑을 다니면서도 밖에 나가면 식사는 거의 내가 준비를 하지만, 여행 중에도 물론 거의 모든 식사는 내가 준비를 하고 있었던 터였는데, 재미삼아 결국 저녁은 다시 내가 준비하기로 했고 소고기 등심을 조금 사다가 야채와 볶아서 샐러드를 만들어 놓고, 작은 와인도 한 병 사서 저녁을 먹었다.

피렌체 시내 곳곳에 많은 광장들이 있는데, 우리나라의 광장이라고는 광화문광장과 이제는 없어진 여의도 광장 뿐이니 조금 아쉽긴 했다. 피렌체의 광장이라해도 그 정도의 규모는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며 활기를 띠고 있는 모습이 우리와 비교되어 부럽기도 했다.

유럽의 시내에는 광장이라는 이름이 참 많다.

그 광장에는 어김없이 버스킹을 하는 예술가들도 많이 있는데 그림도 그려주고 노래도 들려준다. 

지나는 길에 사람들이 모여있어 구경을 했더니 제법 키타를 잘 치고 노래도 잘하는 버스커가 있었는데, 그 옆에 어색한 춤사위를 보여주던 할아버지와 갑자기 어디선가 튀어나온 여행자의 흥에 구경하던 사람들 모두 기분이 좋아졌다.

피렌체 대성당, 즉 꽃의 성모성당의 지하에는 무덤이 있다.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겠지만 원래 성당의 지하에는 무덤이 있다. 성인과 역대 교황, 추기경과 주교들의 무덤이 위치한 곳이 성당의 지하다. 

본래 최초의 성당이 성 베드로의 무덤위에 지어졌고, 상징적으로 미사를 드리는 제대가 돌로되어있는 이유 역시 예수님의 무덤위에서 제사를 지내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 명동성당 지하에도 많은 유골과 무덤이 있다. 이 글을 보면 깜짝놀랄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아무튼, 피렌체에 있는 성당의 지하에도 많은 무덤이 있다. 이 성당의 돔을 만들어 성당의 건축을 완성한 세계의 역작을 만든 브루넬레스키의 무덤이 바로 꽃의 성모성당 지하에 있다. 

지하성당에도 들어가 볼 수가 있는데, 엄청나게 많은 관뚜껑을 볼 수 있었고 그 한켠에 아주 소박하게 자리잡은 브루넬레스키의 무덤도 볼 수 있었다. 

그는 지하에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후대의 사람들이 자신을 존경하고 칭송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을까?

그렇게 피렌체의 일정을 마치고 이탈리아 고속열차를 타고 피렌체와는 전혀 다른 역사가 숨어있는 로마로 향했다.

2 Comments

    • neilson

      맞아요. 정말이지 수 많은 예술가들의 땀과 숨결이 그대로 느껴지는 도시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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