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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세계여행 – 프라하 3

이번에는 프라하의 볼거리와 먹거리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볼까한다. 내가 머물렀던 13일간의 모든 먹거리와 볼거리, 즐길거리에 대한 내용을 담지는 못하는 것은 그 양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가장 기억에 남을법한 것들만 추려서 기록해 두려한다.

프라하라는 곳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다. 다만 “프라하의 봄”이라는 단어는 어디에선가 들어 알고 있지만 그것이 의미가 무엇인지는 전혀 알지 못한다. 나에게 프라하는 그렇게 기억되어 있는 곳이다. 

그렇게 아무런 정보 없이 찾아오게 된 프라하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볼까한다.

전날 우크라이나 키예프에서 쫓기듯이 호텔에서 잠을 자고 오전 비행기를 타고 프라하로 들어가야 했기때문에 전날 저녁 체크인을 하자마자 동네 슈퍼에서 빵과 요거트, 맥주를 하나 사들고 숙소를 찾았다. 카드로 결제를 하려했는데 동네 슈퍼 아주머니와 커뮤니케이션이 잘 되지 않아 손짓 발짓을 하던 중에 옆에서 우리를 도와주려 애쓰던 현지인 아가씨가 있었다. 

“프라하의 봄”으로 기억하고 있는 프라하는 나에게 너무나 먼 곳이다.

우리더러 중국사람이냐 물어봤고, 우리는 한국인이라고 답을했다. 자신이 중국에서 몇개월정도 머물러서 중국말을 조금 알고 있어 우리에게 중국인이냐 물어본것이라고 오해하지 말라고 했고, 우리가 카드로 몇가지 식음료를 결제하는데에 도움을 주었다.

우크라이나에서의 좋지 않았던 기억을 그 여자가 말끔히 씻어주었고,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다시 한 번 우크라이나를 오게된다면 편견을 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누그러질 수 있었다.

프라하는 카를교와 프라하성이 가장 유명한 관광지라고 말할 수 있을것 같다. 물론 주변의 작은 관광지도 상당히 많이있다. 더불어 프라하 카드라고 불리는 관광지 카드를 구입한다면 박물관을 비롯한 많은 관광지를 무료로 관람할 수있는 혜택이 주어진다. 다만 얼마 전까지는 대중교통 역시 프라하 카드를 이용하면 무료로 탑승할 수 있었지만 근래에들어 그 혜택이 축소되어버렸다. 나는 이 정보를 프라하 카드를 구입한 이후에 알게되어 이동하는 교통수단을 별도로 구입해서 탑승을 해야했다. 

프라하 교차로의 트램

아주 맘에 드는 프라하의 두 번째 숙소, 즉 우리가 프라하의 전부를 보낼 수 있는 숙소에 체크인 후에 바로 동네를 둘려볼 겸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을 찾아 나섰다.  

우리가 처음 찾은 식당은 예전 우리나라 고속도로의 자율식당과 비슷한 시스템인 식당이었다. 쟁반을 들고 줄을 서서 지나가면서 먹고 싶은 음식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 적당량을 덜어 담아주고 제일 마지막에 음식값을 계산하고 테이블애 앉아서 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이었다.

체코 식당의 음식은 우리나라의 곱배기 수준이다.

유리창 너머로 아저씨들이 늦은 일요일 점심을 먹기위해서 식사를 하고 있는데 우리네 덮밥 비슷한 식사를 하고 있길래 제법 괜찮아 보여 들어가서 우리도 같이 주문을 해서 식사를 했다.

그런데 그 음식의 양이 보통이 아니었다. 나 혼자서도 먹기 벅찰만큼의 양을 덜어준다. 아내는 부탁을 하다시피해서 덜어주는 음식의 절반의 양 만큼만 받아왔다. 하지만 먹다가 지쳐서 나와 아내는 조금의 음식을 남기게 되었다. 그렇게 프라하의 적응은 시작되었다.

이곳에서 자그마치 12박을 해야하는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아주 여유있는 시간을 보내리라 마음먹고 유명관광지는 아주 천천히, 더 천천히 둘러보기로 생각을 했다.

처음으로 가 보았던 곳은 Náměstí Míru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Náměstí라는 말은 광장이라는 뜻이다. 즉 우리 말로는 “미루 광장” 쯤 되는 곳이다. 그 곳에 커다란 성당이 있었고 제일 처음 들렀던 유럽의 가톨릭 성당이다.

고딕양식의 성당이었는데, 우리가 처음으로 방문한 유럽의 가톨릭 성당이라는 생각과 동네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았기에 친숙한 동네 성당인것 처럼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이 부근이 교통의 요지였다. 지하철과 트램의 많은 노선이 이 근방을 지나게 된다. 또한 도보로 중앙박물관과 바츨라프 광장을 도보로 이동할 수 있다.  

바츨라프 성인 동상이 있는 광장은 우리의 광화문과 비슷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

바츨라프 광장은 우리나라의 광화문과 비슷한 느낌이고, 그 생김새 역시 비슷하다. 다만 광화문광장보다 조금 작고 교통량 역시 적다. 다만 광장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인 배경은 아주 많이 비슷하다.

프라하의 봄으로 대변되는 체코의 독립이 바로 이곳에서 이루어졌고, 국가의 중대사가 있을 때 마다 국민들이 모두 이곳으로 나와 목소리를 내었던 곳이다. 물론 소련이 붕괴되고 냉전체제가 종식되던 그 시절 체코슬로바키아 역시 혼란을 격으면서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각각 독립을 하던 그 때에도 체코의 국민, 프라하의 시민들이 바로 이곳, 바츨라프 광장으로 쏟아져나와 국가를 향해서 목소리를 내었던 곳이라는 설명이 있었다.

우리나라의 광화문과 비슷한 위치인 광장의 제일 상부에는 국립박물관이 자리하고 있고, 광화문의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있는 위치와 비슷한 곳에는 바츨라프라는 성인의 동상이 위치해 있다. 

그리고 프라하의 또 다른 광장이라고 할 수 있는 올드타운 광장으로 가면 위 사진과 같은 장면을 볼 수 있다.

부패되었던 카톨릭에 맞서서 종교분리를 주장했던 얀 후스의 동상이 국민들의 존경을 받으면서 서 있고, 현재도 정상적으로 작동이 되고 있는 천문시계 중에서는 유럽에서 제일 오래되었다는 프라하의 천문시계가 자리를 잡고 있다. 

천문시계는 매시간 정시가 되면 볼거리를 제공해 준다.

올드타운(구 시가지) 주변에는 관광객들로 넘쳐나는데, 그 관광객들을 위해서 올드카 투어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위와 같은 클래식 카들이 고객을 모집하고, 그 고객들이 원하는 곳으로 투어를 진행하고 있었다. 물론 가난한 배낭여행자인 우리들은 꿈도 꾸지 않았다. 

프라하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카를교를 프라하에 머무는 동안 5번 이상은 건넜다.

카를교가 유명한 이유는 눈으로 봐도 제법 멋들어진 다리이지만 그 이야기가 더 흥미롭다. 다리 한 가운데에는 아래의 사진과 같은 석상이 다른 석상과는 다른 색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주인공은 바로 “얀 신부님”이라고 한다.

자신에게 왕비가 고해성사를 했는데, 그 내용을 알고 싶어하던 왕에게도 그 고해성사의 내용을 발설하지 않자 그 왕이 얀 신부의 혀를 잘라서 고문을 하고 끝내 다리 위에서 처형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고해성사의 신성성과 중요성을 이야기해 주는 것 같았다.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얀 신부의 동상을 만지면서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도 있다.

더불어 프라하의 카톨릭 교도들에게는 더 없는 존경을 받는 성인으로 추대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카를교의 어느 버스커
카를교 위의 버스커

또한 프라하에 머물면서 2시간 안쪽의 거리에 있는 카를로비 바리라는 지역과 쿠트나 호라라는 지역을 다녀올 수 있었다. 마시는 온천으로 유명한 카를로비 바리는 프라하에서 버스로 약 2시간 가량 떨어져있는 지역인데, 그 곳에서 치료를 목적으로 온천을 하지않는한 당일로도 충분히 다녀올 수 있는 지역이다. 

카를로비 바리에 도착한건 오전 9시쯤이었다.

유럽의 거의 대부분의 상점이 그렇듯이 아침 9시면 우리나라의 새벽 6시와 비슷한 분위기다. 문을 열고 있는 상점은 한군데도 없고 우리나라에서는 그렇게 흔한 편의점도 유럽에서는 찾을 수가 없다. 이유는 모르겠다. 다만 이해가 되는 점은 편의점이 없고 아침 이른시간, 또 저녁 늦은 시간에 문을 여는 상점이 없다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두 가족과 보는 시간이 아주 많다는 생각이다. 

상점을 운영하는 사람도 우리나라 기준으로는 느즈막히 문을 열고, 저녁 이른 시간에 문을 닫고 집이 들어가 자신의 시간을 가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봤다. 1시간이라도 더 오래 문을 열어서 1가지라도 더 팔아야 한다는 경쟁적인 생각과 삶을 살아가는 우리나라의 문화와는 참 많이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 더불어 이곳에서 문을 절대 닫지 않는 24시간 편의점을 운영한다는 것 역시 이 곳의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카를로비바리에 도착을 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늦은 아침을 먹는 일이었다. 하지만 조금 전에 언급했듯이 문을 열고 영업을 하는 곳이 단 한군데도 없었다. 

우리나라의 유명한 관광지라면 오전 10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에 최소한 편의점이라도, 아니면 김밥가게라도 문을 열고 손님을 맞이할 텐데, 정말이지 이 곳에서는 단 한군데도 밥을 먹을 수 있는 곳이 없었다. 

우리는 거리를 배회하다가 10시가 조금 지나서야 작은 카페에 들어갈 수 있었고, 그곳에서 토스트와 커피 한 잔, 쥬스 한 모금을 먹을 수 있었다.

카를로비 바리 지역의 온천투어는 총 15개의 마실 수 있는 온천과 1개의 간헐천으로 되어있다. 15개의 온천을 모두 돌아도 빠르면 1시간 이내면 충분이 둘러볼 수 있는 거리에 있다. 그러니 이 글을 보는 여행자들은 부디 천천히 여유를 가지고 둘러봐도 될것 같다. 그 이외의 볼거리는 푸니쿨라-언덕을 오르는 케이블카-를 이용한 전망대 정도가 될 것같다. 

프라하로 돌아와서 다음 날에는 쿠트나 호라라는 지역을 다녀왔다. 이 곳은 미스테리극장이나 MBC의 서프라이즈 같은 프로그램에서도 소개가 되었던 해골성당으로 더 유명한 세들레츠 납골당을 다녀왔다. 

이런 곳이 지구상에 있다고는 알고 있었지만 프라하에서 지척이라고는 알지 못했었는데, 우연히 프라하의 지도를 뒤져보다가 알게되었고, 급하게 열차를 예매해서 다녀올 수 있었다. 

체코의 열차를 예매하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쿠트나 호라 역에서 세들레츠 납골당까지는 전기를 이용한 버스가 수시로 다니고 있었고, 요금은 프라하 시내버스의 절반가격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물론 도보로도 이동할 수 있는데 시간은 약 15분 정도 걸었던 것 같다.  

열차에서 내리면 거의 모든 사람들이 세들레츠 납골당을 향해서 걸어가기에 우리도 그들을 뒤따라 걸어갔고, 그들이 티켓을 구입하기에 같이 티켓을 구입했다. 다만 티켓은 세들레츠 납골당만 입장하는지, 성모성당도 함께 입장하는지에 따라서 요금이 조금씩 다르다. 

세들레츠 납골당은 두 번의 흑사병과 전쟁으로 인해서 많은 서민들이 죽어갈 때에 그 들의 장례를 치뤄주고, 묻혀야 할 곳이 없어 거리에 시신들을 내팽개치던 그 때에 이 납골당이 었던곳에 있던 수도사가 그들의 시신을 거둬주고 성당에 묻어주는 일을 하다가 시간이 지나서 본인이 죽기 전에 편지를 하나 써서 남기게 되었고 후에 우연히 이곳에 저택을 지으려던 지주가 그 편지를 발견하고나서 그 뜻을 헤아려서 저택을 짓지않고 그 수도원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그 곳에서 발굴된 유해를 가지고 수도원을 장식(?)하며 그 뜻을 이어나갔다는 이야기가 있는 곳이다. 

세들레츠 납골당을 방문하는 여행자들의 일부가 유골에 모자를 씨우거나 썬글라스를 씌우고 사진을 찍고, 유골에 키스를 하면서 인증샷을 남기는 몰지각한 여행자들 때문에 내년 부터는 이곳에서의 사진 촬영을 금한다는 뉴스를 여행중에 보고나서 이 곳을 방문한게 더 큰 의미가 되었다.

체코는 또한 맥주가 상당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프라하의 뒷골목의 저녁시간은 밤 12시까지는 항상 펍에서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나 역시 그들과 섞여 맥주를 마셨는데, 가장 맛있었던 2곳의 맥주에 대한 이야기는 꼭 남겨두려한다.

처음 들렀던 곳은 한국에서도 염소광고로 유명한 코젤맥주를 판매하는 곳이다. 다만 그냥 코젤 맥주도 있지만 코젤 다크라고 하는 흑맥주를 직접 판매하는 곳으로 유명한 곳이다. 이 곳에서 동유럽의 음식으로 유명한 타르타르와 굴라쉬, 그리고 코젤 다크를 함께 먹었다. 맥주는 흑맥주처럼 아주 진한 색이지만 보통의 맥주보다 알콜 도수가 조금 낮은 3.2도이고 목넘김이 아주 좋아 여자들이 정말 좋아할 수 밖에 없겠다 싶었다. 물론 나도 아주 맛있게 먹었고, 먹고나서도 배가 부르다거나 입안이 텁텁하지도 않았다.

그 다음에 이야기할 곳은 여행중에 프라하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해주면서 정보를 주던 친구녀석이 알려준 곳인데 정작 본인은 못가봤다면서 나더러 꼭 가보라고 했던 곳이다. 이 곳 역시 맥주는 정말 맛이 좋았다.

오후 3시에 문을 여는 곳인데 우리가 도착한 2시 40분에 이미 우리 앞에 4명의 일본인이 줄을 서 있었고, 시간이 임박해 지니 우리 뒤로 대략 20여명의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우리가 줄을서서 사진을 찍고 이야기를 나누는데, 바로 뒤에 서 있던 외국인이 말을 걸어왔다. 자신은 헝가리에서 왔고 틈이 날때마다 이 곳에서 맥주를 마신다 했다. 더운 여름철에는 이 줄이 약 300미터는 족히 서 있다면서 우리더러 프라하에서 최고의 선택을 했다면서 이야길 해 주었다.

한국에서 왔다고 했더니 헝가리 뉴스를 보여주면서 오늘 아침에 북한의 김정은이 금강산의 빌딩들을 모두 폭파했다고, 미사일이 무섭다면서 혹시 한국에는 별일이 없냐며 걱정을 해 주었다.

급하게 나는 뉴스를 검색했지만 북한 뉴스는 하나도 없었다. 나는 한국에서는 북한의 뉴스가 실시간으로 도착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해주면서 한국은 전쟁이 없으니 걱정하지 말라면서 내가 오히려 안심을 시켜줬다.

이 맥주집은 앉으면 바로 인원수에 맞춰서 맥주를 가져다주고 잔이 비면 계속 잔을 채워서 가져다준다. 그러니 그만마시고 싶으면 바로 이야기를 해 주어야한다.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이 체코를 국빈방문 했을때에 체코의 대통령이 이 곳을 최고의 맥주라고 하면서 함께와서 맥주를 마셨다는 이야기와 사진이 있다. 그러면서 더 유명해진 곳이다. 

이렇게 프라하의 유명한 관광지에대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