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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나는 내 어머니를 “어머니”라고 불러 본적이 없다.

나와 어머니의 나이는 21살 차이가 난다. 어떤 사회학자가 이야기했듯이 세상의 모든 아들들의 첫 사랑은 자신의 어머니라는 말이 맞는지 모르겠다. 나 역시 어머니를 생각하면 가슴부터 저려오는 것이 꼭 첫 사랑을 생각할때 느껴지는 그것과 비슷하니 말이다.

내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타워크레인 운전을 했다. 다른 사람에게 이 이야기를 하면 다들 놀라면서 이야길 시작한다. 그 누구의 반응도 마찬가지다. 혹, 내가 그 반응을 즐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내 어머니의 이야기를 하면서 내 어깨를 으쓱하게 되는지도…

가정형편이 조금씩 기울어가던 10대 시절에 어머니는 신문에 나왔던 타워크레인기사 교육모집 공고를 나에게 보여주며 의논을 하셨고, 나는 긍정적으로 답을 했다. 그리고 얼마동안의 교육생 과정을 거치면서 엄마는 결국 타워크레인 기사 자격증을 취득했고, 그렇게 교육생을 벗어나 직접 현장에서 뛰는 타워크레인 기사가 되었다.

거친 남자들만 있는 건설현장에서 40대 초반의 여자가 버틴다는 것이 결코 쉬운일이 아니었을 거다. 더군다나 아침에 크레인에 올라가면 저녁에 해가 떨어질때까지 한 번도 내려올 수 없는 크레인의 특성때문에 식사와 생리현상을 모두 한 평도 되지않는 그 공간에서 해결을 해야했다. 하루에 한 번 크레인에 달아서 올려보내주는 간식인 빵과 우유, 음료수를 모아두었다가 나에게 갖다주곤 했었고, 철이 없던 나는 그냥 고마움만 생각하며 그 빵을 먹었던것 같다.

가끔은 TV에도 나왔었고, 그 보다는 자주 신문이나 잡지에도 엄마에 대한 기사가 실렸었다. 크레인에서 틈틈히 써두었던 이야기를 라디오프로그램에 보내서 당선이 되어 작은 선물이나 원고료를 받기도 했었다.